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은행잎 향기 가득한 연악산 수다사

문근영 2011. 1. 13. 10:17

 

  산사의 향기를 맘것 음미하는 순례회원들

 

  연악산 수다사 일주문

 

 표갈(表碣)  佛糧碑   位畓 上松洞 321坪 水多寺入   (庚辰 1940年) 住持 金奉律. 監員 李永祚
  處士海州吳公 忌(기)三月十九日.     孺人東萊鄭氏 忌(기)九月初三日.  女 吳奉善. 外孫 朴石述    

      

  포대화상(包袋和尙).
포대화상은 본래 포대화상은 중국의 승려였다. 이름이 계차(契此)로, 명주 봉화현 사람이다.
몸집이 뚱뚱하며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습을 하였으며 말이 일정치 않고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하였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하면 달라고 하여 자루에 넣곤 하므로 사람들이 포대화상이라
불렀다. 913년 3월에 명주 악림사 동쪽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입적했는데,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미륵이 진실로 미륵일까
  分身百千億(분신백천억) 그 몸을 나투심이 백천억개일세
  時時示時人(시시시시인) 때때로 아무에게나 나타나건만
  時人自不識(시인자불식)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미륵 보살의 화현인 줄 깨닫고 그 모습을 새겨 존경하며 받들었다 한다.

 

 

  수다사 대웅전

 

 대웅전 공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대좌

  현재 독존으로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원래 삼존상이었으나 양 협시(관세음+대세지_보살상은 외부로 반출되어

  대세지보살상은 구미 원각사에 봉안되고 있고, 관세음보살상은 대구 ㅁㅁ암에 옮겨 봉안되었다.

  선산읍 원각사(圓覺寺) 대세지보살상: 복장에서 순치(順治) 6년 9월(1649년 인조 27) 수다사가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아미타 삼존불을 조성하였다는 조상기가 발견되었다. 목조대세지보살상은 현재 선산읍 원각사에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내 왼쪽벽에나툰 문수보살상 ▲                                        대웅전내 오른쪽벽에나툰 문수보살상 ▼

 

 수다사동종(水多寺乾隆37年銘銅鐘 영조48 건륭 37년(1772)

 

  대웅전 옆에는 정면3칸 측면2칸의 명부전이 자리한다.  명부전 단청하기전의 모습

 

  명부전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익공계 맞배지붕건물이다. 안내게시판에는 측면 3칸으로 오류되었다.

 

  명부전 우주 주두위의 들보뻘목이 화두형으로 매우희소한 양식이다.

 명부전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익공계 맞배지붕건물이다. 안내게시판에는 측면 3칸으로 오류되었다.
공포는 주심포 양식으로 각 기둥의 상단 주두위 들보뻘목에는 통나무재료에 꽃그림을 넣어 공화의 상징을 오묘하게 장식되어있는데
이는 화두계(花頭系)양식으로 매우 희소한 고식기법이다.
정면 외벽에는 반야용선과 기타 벽화로 가득한데 박락이 심하여 그 내용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명부전 외벽화: 박락이 심한 반야용선도와 화병

 

  명부전 지장삼존상

 

  승요

 

 삼성각  치성광탱

 

  삼성각 독성탱

 

 삼성각 산신탱  불기 2536년 조성

 

  산신각

 

  소나무아래에 모아둔 석탑부재

 

 

  노란 은행잎이 제자리에서도 아름답지만 떨어져 쌓인 이모습도 가히 !!!!!!!!!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연악산수다사 (淵岳山水多寺)    경북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산12    직지사의 말사
『수다사약전(水多寺略傳)』에 따르면 830년(흥덕왕 5)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연악산 상봉에

백련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연화사(淵華寺)라 이름 붙인 데서 비롯한다고 한다.
그 후 976년(경종 1)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1185년(명종 15)에

각원대사(覺圓大師)가 중창하여 사명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이후 1273년(원종 14) 큰 수해를 입어 건물 몇 동만 전해왔다.

1572년(선조 5) 사명대사가 중수해 사명을 수다사라 하고

의승(義僧) 만여 명을 모아 의국법회(義國法會)를 열었다.
1704년(숙종 30)에는 사찰이 소실되었고, 대웅전, 시왕전, 극락당 등만 잔존하였다.

김수온(金守溫)이 남긴 「수다사상전기(水多寺相傳記)」에 따르면 화엄승통(華嚴僧統) 화옹(和翁)에서

시작하여 해유(海乳), 성관(性寬), 학의(學誼)에 이르기까지 법손(法孫)을 주지(住持)한 사원이라 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명부전. 적묵당. 삼성각. 산신각. 요사. 석탑부재. 수다사동종 등이 있다.

 

사찰측에 의하면 원래 삼존상이었으나 양 협시는 외부로 반출되어

목조대세지보살상은 구미 원각사에 봉안되고 있고,
관세음보살상은 대구 누봉암에 옮겨 봉안되었다.

 

이 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 유물은 도난 당하였지만,

원각사(圓覺寺)로 옮겨진 불상 복장에서 순치(順治) 6년 9월(1649년 인조 27)
수다사가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아미타 삼존불을 조성하였다는 조상기가 발견되었다.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삼존불상이 봉안돼어왔는데 현재는 대세지보살상은 원각사에,
관음보살상은 대구시 ㅁㅁ암에 봉안하고 있다는데 !!!???. 위치를 추적할수없다.

 

가을은 이미 지나고 초겨울에 이르렀건만 날씨는 화창하여 연악산 수다사 경내외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삼사순례를 원만히 회향하게돼니 더욱 감사할따름이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木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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