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 대곡사 일주문
벙거지 모자를쓰고 치켜올라간 눈매에 송곳니와 윗 이빨을 드러내고 긴수염을 기른 대곡사 석장승
장승의 머리. 전신의 석장승과 안면의 표정이 흡사한데 눈썹이 굵게 표현되었다.
범종루 정면에 걸린 대곡사 현판 을미冬 金政書
범종루 경북 유형문화재 제161호. 정면과 측면 각 3칸의 팔작지붕 2층 다포계 누각 건물로, 정면▲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하나씩 놓은 반면 가운데 칸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측면▼
범종루 귀공포 내3,외2포로 앙서안에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귀공포상단에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며 ...
범종루 내에 걸린 편액 泛鐘樓
이 사진은 오래전의 것으로, 2008.4 탐방하니 사라지고 없는상태이다. 다시 볼수없으니 매우 안타깝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시대의 문신·문인. 본관 황려(黃驪:驪興). 자:춘경(春卿). 초명:인저(仁氐).
호:白雲居士.지헌(止軒).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시호:문순(文順).

범종루 화반
범종루에 걸린 목어
범종루 누하주와 자연석 주춧돌 그렝이기법
청석다층탑 경북문화재자료 제405호
점판암으로 만든 고려 초기의 청석탑(靑石塔)으로, 상륜부는 없어졌으나 화강암으로 된 기단부와
점판암으로 된 탑신부는 약간의 손상을 입은 상태로 남아 있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사각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에 함께 기단부를 형성하는 하대석이나 중대석.연화대좌.상대석이 차례로 놓여져 있다.
현재 각층 탑신석은 없고 옥개석은 12층이 남아 있다. 본래 13층을 이루었으리라 추정한다. 현재 높이는 173㎝이다
명부전 지장삼존상 지장보살좌상의 목조대좌가 화려하고 매우 조각이 섬세하다.
명부전의 직부.사자. 판관. 녹사. 금강역사상 .
맞배지붕에 정면 5칸, 측면 2칸.
비봉산 대곡사 대웅전
높은 수미단위의 삼존불
대웅전내 소조소불 13위.
이 소형 여래좌상은 본래 53불이었는데 1850년 무렵 정인조라는 주지가 53불전을 헐고 그 땅을 지방민에게
매각하였다고 전한다. 이 때 53불이 방치되어 산 속으로 흩어졌는데, 일제강점기에 최인찬 주지가 주석하고
있을 때 한 여신도에 의해 발견되어 다시 모셔져 영험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 몇 위씩 찾았으나 결국
지금은 13위만 남았다고 한다. 12불은 호분으로 입혀졌으며 한불상은 개금하였다.
이 13위의 불상은 조성 양식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우측 천정에 매달린 반야용선. 불교의식때 사용하던 기물로 소종이 9개가 있었을걸로 사료되는데
현재 4개가 달려있으며 당겨 흔들던 노끈줄이 없으며
한쪽 용두가 없는상태로 보전되어오니 그나마 귀한 자료이다.
나한전 나한상
산신각과 산신탱
대형 맷돌
주춧돌군
석등의 상하 복.앙련대석과 부도의 옥개석 등이 층층이 쌓여져...
부도 탑신부 명문 00 선화자
초입에 모여있는 부도와 석재들
비봉산 대곡사 (飛鳳山 大谷寺) 경북 의성군 다인면 봉정동 894
비봉산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인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1960년 대곡사 ‘탑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을 볼 때 그 이전에 창건으로 추정된다.
고려 말의 이규보가 대곡사를 방문하고 지은 시문 제목에 ‘대곡사’라 되어 있어 13세기 초중반에 이미 절이
있었고, 이름이 대곡사였음을 알 수 있다.
가람뒤 담장안에는 대형맷돌과 주춧돌이 모여져 있고, 석장승 1구와 머리만 남은 석장승.
부도 2기와 석등 하대석 2기 등 그 옛날 번창하였던 석물들이 많이 산재해있다.
석장승은 마을 공사 때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1687년(숙종 13) 태전(太顚)이 중건하면서
이곳 태행봉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100리나 되는 긴 계곡이 보인다 해서
대곡사로 절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나 근래에는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곡사에서 ‘화전(花田) 놀이’가 열려
의성뿐만 아니라 인근의 안동·예천·상주·구미 등지에서까지 선남선녀들이 운집하여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대곡사에는 현판이 여러점이 전하는데 그 중 고려 말의 문신 이규보가 대곡사를 찾고 나서 지은 시를 새긴
현판(제대국사) 1매가 전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져 안타까울뿐이다.
일주문. 범종루 .명부전 .대웅전 삼존불(본존불은 아미타하품중생).나한전.산신각. 요사등의 전각이 있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시대의 문신·문인. 본관 황려(黃驪:驪興).자:춘경(春卿).
호: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초명:인저(仁氐).시호:문순(文順).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 참군사(參軍事).사재승(司宰丞).
우정언(右正言)을 거쳐 1219년(고종 6)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계양도호부부사로 좌천.
예부낭중(禮部郞中)·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위위시판사(衛尉寺判事).
비서성판사(書省判事).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정당문학(政堂文學).참지정사(參知政事).태자소부(太子少傅) .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였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백운소설(白雲小說)》《국선생전(麴先生傳)》 등,
'문화유산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봉두산 옥련사(의성) (0) | 2010.12.31 |
|---|---|
| [스크랩] 석탑리 방단형적석탑(의성) (0) | 2010.12.29 |
| [스크랩] 비봉산 대곡사 범종루의 미(의성) (0) | 2010.12.28 |
| [스크랩] 선방산 지보사 (군위) (0) | 2010.12.28 |
| [스크랩] 선암산 압곡사 가는 길은 (군위) (0) | 2010.12.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