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이 놀던 곳인가? 바위에 바둑판이,,, 그런데 않을자리가 비스듬한게 놀이를 위한것 같지는 않고 누가 그냥 새겨놓은것 같다 크게 웃는 계곡인가?-연못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가물어서 그런지 물은 보이지 않는다 가락 김해김씨들의 땅이었나?-계해년 가을이면 언제쯤인가?- 240년전인가? 종목 : 국보 제307호 우리나라 마애불상의 초기 예로 부채꼴 바위 면에 사각형 감실을 마련하여 중앙에 보살상을 두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1구의 불상과 2구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삼존불상과 달리 2구의 불입상과 1구의 보살입상이 한 조를 이루는 특이한 삼존불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2구의 불입상은 양감 풍부한 얼굴에 크게 번지는 미소,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장대한 체구, U자형 주름과 y형 내의가 보이는 착의법, 도톰한 듯 날카로운 대좌의 연꽃무늬 등 세부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양식 특징을 보인다. 좌우 두 불상 사이에 끼여 있는 듯 뒤로 물러나 작게 새겨진 보살입상은 높은 관에 아무런 무늬도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본래는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타원형으로 길고 통통한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 원만상이며, 신체는 원통형으로 직립해 있다. 어깨를 덮어 내린 천의는 길게 내려와 무릎 부분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며 묵중하게 처리되었으며 배 앞에 모은 두 손은 오른손을 위로 하여 보주를 감싸 쥔 이른바 봉보주인(捧寶珠印)을 나타내고 있다. 불신의 하반부가 노출되어 백제시대의 연화대좌가 확인됨으로써 그 도상적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상 요충지에 자리함으로써 6세기 중반 경 중국 북제양식 불상과의 영향 관계 파악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며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에 선행하는 조형양식을 지닌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불상이란 점에서 국보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일까? 얼굴표정이나 볼륨감을 느낄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이 훼손되어 있어 아쉬움이 크다. 서산마애삼존불은 아직도 그 미소, 순진무구한 어린이 같은 표정들이 살아 있건만................. 큰 바위인데 마애삼존불상만 건물안으로 들여놓았다 마애 삼존불 바로 위에있는 감모대 예전에 저곳에서 이 지방에 오는 관리들을 맞이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아시는것처럼 한때 불교가 수난을 겪던 시절이 있었잖습니까! 이 지방의 수령이 부임해 내려오면 저곳에서 수령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수령의 은혜에 감사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셔드리던 곳이라는 뜻이지요." 일설에는 김해 김씨들이 조상을 모시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감모대 를 가까이에서 길 옆에있는 백조바위 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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