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서산 보원사지

문근영 2010. 12. 11. 10:42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 103호

 

  보원사지  석조  보물 제 102호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 104호

 

 오층석탑의 하층기단면석의 사자상

 

  보원사지  법인국사 보승탑 + 보승탑비

 

 보원사지 보승탑  보물 제 105호  1996년도의 모습.  상륜부 상단의 보주형의 석재가 2개  ?

 보승탑  보물 제 105호   2005년도의 모습.  

 

  보승탑의 옥개석과 상륜부                         2005년의 모습

 

  법인국사 보승탑의 탑신석

 

 보승탑의 기단부

 

 보승탑의 지대석-하대석 상,하

 

 보승탑의 하대석 안상 속에 조각된 사자상  ↕

  보승탑 하대면석의 사자상  ↕

 

  보원사지 보승탑비의 귀부  거북의 몸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

 보승탑비의 용두

 

  법인국사 보승탑비의 귀부 뒷면   ↕

  보승탑비  거북의 꼬리

 

  보승탑비의 이수  구름속에서 용 4 마리가 서로 뒤돌아 보는 모습들

 

  보원사지  석탑의 부재들

 

 보원사지 축대,   그 옛날 영화로웠던 보원사의 돌축대는 겨우 ....!

 

서산 象王山 普願寺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한 백제시대 사찰의 터로 사적 제 3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터에는 10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유물이 남아있다.
1968년에는  백제시대의 금동여래입상과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이 발견 되었다.

보원사지의 내력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물 103호)

절에서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지탱해 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보원사지 석조  (보물 102호)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으로, 화강석의 통돌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으로 규모가

거대하여 장중해 보인다.  밑바닥의 한쪽에 약 8㎝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104호)

2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하층기단면에 사자상을, 상층기단면에  팔부중상을 2구씩 새겼다.

탑신에서는 1층 몸돌 각 면에 문짝 모양을,상륜부에는 노반,찰주가 있다.

 

보원사지 법인국사보승탑(보물 105호)

법인국사 탄문(坦文)의 부도.

하대면석의 안상안에 사자 한 마리씩을 , 중대받침면석에는구름속을 거니는 용의 모습을,  

귀꽃이 새겨져 있으며,  상대석에는 난간을 표현 하였다.

탑신은 8각으로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사천왕상,인물상이 있다.

 

보원사지 법인국사 보승탑비(보물 106호)

비좌대는 거북모양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목은 앞으로 빼고

콧수염은 뒤로 돌아 있으며 눈은 크게 튀어 나와 있다.

이수에 용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법인국사(法印國師)는 광종 25년(974)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이듬해에 입적하였으며,

비는 경종 3년(978)에 세웠다.

 

법인국사 탄문

법인국사(900~975)는 신라말 고려초의 승려로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자는 대오, 법명은 탄문(坦文), 시호는 법인(法人), 성은 고씨.
그의 어머니가 꿈에서 귀신과 관계 하는데 한 중이 금빛의 자를 주고 갔는데 그날 임신이

되어 태어난 이가 법인국사이다.
원효대사가 살던 향성산 옛 절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 925년에 고려 태조의 왕후 유씨가

임신하자 왕명을 받고 아들을 낳도록 기도를 드려 왕의 신임을 받게 되었고 그 아이가

4대 광종이 되었으니 탄문과 고려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는 더욱 공고하게 되었다.

탄문이 50세 되던 949년에 4대 광종이 즉위하자 대궐에서 법회를 베푼 뒤 개경에 새로

낙성한 귀법사의 주지로 왕사(王師)가 되었다.

광종 26년인 975년에 탄문이 은퇴를 청하자 광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임명하고,

보원사로 떠나는 그를 태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개경의 교외까지 나아가 전송 하였다고

한다.  그해 3월에 가야산 보원사에서 열반하였으니 탑호가 보승(寶承)이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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