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을수록 함께 할 수 있어
산승 법정(法頂)스님이 아주 오랜만에 세상에 내려와 입을 열었다. 스님은 지난 12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동안거 해제법문을 마친 뒤, 신간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신간은 그간 당신이 쓴 글을 발췌해 엮은 책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미국 등 5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된다. 스님의 육성과 표정을 기사로 옮기는 건 매우 드문 기회. ‘베스트셀러 작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 … 화려한 ‘기호’로만 존재하던 스님을 처음 뵈었다. 맑다. 참 맑다는 말 외엔 별다른 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님에게 올해는 특별하다. 출가한 지 50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꼬박 반세기를 수행자로 살아온 소감을 물었다. “수행자에겐 세월 따윈 묻지 않는 법이오. 하지만 문득 돌아보니 어느덧 50년이 된 걸 알았지. 반성이 앞섰소. 제대로 살았는가, ‘헛이름’만 세상에 떨치고 실상은 빈껍데기인 중노릇 하지 않았는지.” 스님에게 산은 집이자 힘이었고 삶 그 자체였다. 강원도 두메산골 화전민 농가에서 혹은 송광사 불일암에서 당신은 가끔씩 글로써 자신의 근황을 알렸고, 세상은 지극히 단순하고 조촐한 산중의 일상에 열광했다.
15년전 한 지인이 “산에서 혼자 사는 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느냐”며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스님은 “나는 그냥 여기서 내 삶을 살 뿐인데 신기하게도 남들이 다 좋아하더라”고 받아쳤다. 궁색했다. 순간 산은 벽이 됐다. ‘나는 왜 산에서 사는가.’ 한달에 한편씩 성찰을 위해 썼다. 자연 속에서 사니 나날이 행복할 따름이다. 넘치는 행복을 나누고픈 소망이 생겼다. 보시를 위해 썼다. 반세기 산인이 체득한 경지를 스님은 새 책의 한 구절로 갈음했다. ‘산을 그저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지난날 못내 아쉬운 건 승려생활 초기에 ‘괴팍’을 떤 것이오.” 괴팍? 담박하기만 한 글을 감안하면 전혀 짐작하기 어렵다. 스님은 해인사 선방 시절, ‘네가 옆을 지나가면 베일 것 같다’는 엄살 아닌 엄살을 들었다. 한번은 취재하러 온 기자가 스님의 눈매를 보자마자 줄행랑을 친 적도 있었다. 스님은 “‘풋중’의 결기였다”고 회고했다. 선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사자새끼’였지 싶다. 매사에 혼신을 다했고 옳고 그름에 목숨을 걸었다. 스님은 본래 오돌또기 산승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스님의 글감은 주로 사회적 문제였고 고통이 분명하게 보이는 문제였다.
마음 활짝 열고 산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됩니다…
월남전 파병반대 칼럼 썼다가
승적박탈 위기몰린 일화 소개
불교신문에 월남전 파병을 반대하는 칼럼을 썼다가 승적 박탈 직전의 지경에 놓이기도 했다. “부처님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빌다니,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소.” 불조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행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스님은 분노했고 분노는 삶의 방향을 바꿨다. 유신정권의 폭압 아래서 정의에 대한 요구가 불같았던 시대, 민주화를 원한다며 입에서 독을 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당시 내 마음은 정권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있었지. 그게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망치겠다 싶었고. 모든 것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간 건 환지본처(還地本處)였던 셈이오.” 젊은 날의 벽창호가 후회만 되진 않는다. 일견 고맙다. “그 덕에 불의와 어설프게 타협하지 않고 내 길을 꿋꿋이 걸을 수 있었으니까. 무릇 수행자는 하늘을 찌를 기상을 갖고 있어야지. 살불살조(殺佛殺祖). 이 세상에 두 사람의 부처님이 필요 없어요. 독창적인 길을 가야지. 누군가의 모조품으로 소중한 한생을 허비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오.”
스님은 송광사에서도 해인사에서도 화엄사에서도 지냈다. 그들의 자연은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흔히 개인의 인격형성에서 인문사회적 영향이 더 크다고 여기지만 나는 자연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봐요. 그 지역의 바람 햇볕 개울물 나무가 그 사람을 키우는 거요. 자연처럼 위대한 교사가 없지. 첨단 문명에 사람들은 갈가리 찢기고 상처받았죠. 그럴수록 자연에 귀의해야지. 흙에서 멀수록 병원과 가까워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스님은 “덕(德)이야말로 사람의 기본 바탕임을 날이 갈수록 절감한다”고 말했다. “한 생애에서 남는 건 뭘까. 재산 명예 이것들은 부수적인 것이오. 본질은 평소에 어떤 행위를 했느냐는 것이지. 얼마나 덕을 베풀었느냐, 이웃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 그것이 인생의 자산으로 남지. 사람이 죽으면 살아서 이웃에 끼친 덕으로 남아있는 이들에게 평가받기 마련이죠. 그런데 현대사회는 덕을 쌓을 줄 몰라. 덕을 감하는 일에만 매달리지. 그러니 늘 외롭고 황량하고 주변에 친구가 없을 수밖에.”
스님은 누구보다 고독했고 고독을 사랑했다. 그것이 스님의 가장 단단한 대중적 매력이었다. 당신이 자청한 고독의 내공 앞에서, 남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호명하고 주시하고 추켜세워야 비로소 안도하는 세인들은 잔뜩 움츠러들었고 선망의 추파를 던졌다. “사람은 가끔은 고독해야 해요. 그래야만 마음이 정화가 돼. 고독해야 자비심도 우러나는 법이오.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함께 있을 수 있죠.”
단 ‘고독’과 ‘고립’은 단호히 구별했다. “고립은 단절이오. 홀로 있어 스스로 괴롭고 남들이 가슴 아프면 그건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지. 예전엔 내 생각대로만 글을 썼어요. 교도소나 먼 외국의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었지. ‘불특정 다수라 하더라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글은 써선 안되겠다.’ 여러분들은 모두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글을 쓰면서 또는 사진을 찍으면서 혹은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에게 덕을 베푸세요. 자기가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결코 값어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완전하므로 상대방의 완전함을 인정하는 일. 그것이 고독의 진정성이다. ‘50년 수행해서 이른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거창하고 신비한 것을 바란다면 역시 우문(愚問). “현재의 나지. 잘 됐건 못 됐건 현재의 나밖에 없소.”
겨울의 막바지, 길상사 경내는 춥고도 눈부셨다. 바람과 햇볕은 각자 최선을 다해 온몸을 지상에 풀어놓으며 조화를 이뤘다. 그 뒤로 스님이 해산한 고독이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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