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길은 달라도 궁극은 같은... "
당대의 시인 백낙천이 조과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합니까?"
조과 선사가 대답했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
"그런 것쯤이야 세 살 먹은 아이도 압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쉽게 알 수 있으나
백살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읽으면서
요즈음 입으로는 종교인 입네 하면서
행동으로는 그렇지 않은 분들을
너무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차라리 종교인이 아니라면
그런 욕을 먹지 않을 터인데
그들이 종교인이라는데 더 많은 욕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지적으로 탐구해야지
맹목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극히 위험한 광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나는 어느 불교신문에 소개된
불화와 성화의 비교 33장면을 보았습니다.
예천 법화암 주지 학림 스님이 조사한 것인데
그중 3장면만 소개하면,
절이나 성당을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그림으로 장엄한다.
사찰의 벽화로는 부처님 일대기,
전생도, 심우도, 설화 등이 그려져 있으며
성당에는 성인, 천사 등을 주 소재로 하는
벽화를 그리는데
고려불화와 바티칸 제단화에서
협시보살과 천사들의 배치가 거의 비슷하며,
해인사 법당 용마루 밑의 삼각 부분에
'원이삼점'이 그려져 있는데
'원이삼점'의 큰 원은 우주 법계를,
작은 세 개의 원은 각각 법신, 해탈, 반야를 의미한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삼각 지붕 부분의 큰 원은 우주를,
가운데 세 개의 원은 성부, 성자, 성령의
3위 1체를 상징하고 있다.
마지막 1장면은 수월관음도[미국 하버드 대학 박물관 소장]와
암브로시오가 그린 성모자상[브레라 미술관 소장]인데
대자대비로 상징되는 관세음보살과
고결함과 자애의 모성으로 표현되는 성모 마리아의
눈길이 너무도 닮아 보인다.
관세음보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중생을 고난에서 구제하는 자애롭기 그지없는
어머니와 같은 보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역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감싸안는
성스러운 모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리라.
나의 장점 혹은 단점을 알려면 먼저 남을 알아야 한다.
남을 모르고 나의 장점이나 단점이란 있을 수 없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얘기를 했지만 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다종교 상황이 전개되는 시점에서는
무엇보다 국민분열을 막기 위해서도 상호존중이 중요하다.
1년이면 수많은 훼불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막는 일도 종교인 각자가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도 상대방을 언제나 존중한다면
종교간의 대화는 열릴 것이며 갈등은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천주교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서 하느님을 믿고,
불교가 석가모니를 믿는 지향성은 달라도
그 궁극의 목표(천당/극락)는 같다고...
그런 의미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상호방문 축사와 같은 맑은 정신은
정말 아름답다.
불교 문우회 전북회장
시인 : 주 봉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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