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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암이 ‘하풍죽로당’을 지은 뜻 / 이종묵

문근영 2010. 12. 1. 10:45

제13호 (2006.8.30)


연암이 ‘하풍죽로당’을 지은 뜻

 

이 종 묵(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791년 연암 박지원은 경상도의 조그마한 고을인 안의에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하풍죽로당(荷風竹露堂)을 지었다. 연꽃에 바람이 불고 댓잎에 이슬이 내리는 집이니 얼마나 운치가 있는가? 중국의 이름난 시인 맹호연이 “연꽃에 바람 불어 향기를 보내오고, 대나무에 이슬 맺혀 맑은 소리 울린다”에서 이름을 딴 것이리니 그 풍류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붉은 벽돌집을 보고 와서

그런데 하풍죽로당은 전형적인 중국식 건물이
다. 일각문을 세우고 둥근 창을 내었으며 호리병 모양의 지붕을 씌우고 아치형의 홍교를 만들었다. 또 기와를 가지고 담장에 육각형이나 사슬로 이어진 고리 문양을 만들고 이것이 하풍죽로당의 가장 빼어난 점이라 하였다. 풍류를 즐기자면 전통적인 방식의 정자를 물가에 세우면 될 것인데, 연암은 난데없이 중국식 건물을 시골구석에 세웠다. 그 뜻은 무엇인가?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장관(壯觀)으로 그 많은 것을 제쳐두고 남들이 보지 않는 깨어진 기와조각 들었다.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 사람이 버리는 물건이지만 마을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 위에 두 장씩 마주 붙여 물결무늬가 되도록 하기도 하고, 네 쪽을 안으로 합쳐 동그라미 무늬가 되도록 하기도 하며, 네 쪽을 바깥으로 등을 대어 붙여 옛날 엽전 모양의 구멍 모양을 이루기도 한다. 기와 조각을 서로 맞물려 이러 저리 뚫린 구멍이 안팎으로 마주 비치면서 별별 무늬가 다 생기고 보니, 한 번 깨진 기와 조각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아름다운 문채를 이룬 것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라 하였다.

연암은 연꽃과 대나무를 심어두고 그저 풍류만 즐기기 위하여 하풍죽로당을 만든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뿜는 연꽃을 보고 바람과 같이 백성을 교화하고, 이슬에 젖은 대나무를 보고 이슬과 같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 ‘하풍죽로’의 진정한 뜻이라 하였다. 연암은 중국식 건물을 통하여 백성에게 이슬과 같은 은혜를 베풀고 바람과 같이 교화를 하고자 한 것이다. 이슬의 은혜와 바람의 교화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연암이 목적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연암은 1780년 북경과 열하를 오가면서 붉은 벽돌집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몇 년 전 북경에서 열하로 가면서 들른 고북구에서 그다지 부유하지도 않은 농가를 본 적이 있다. 비록 상당한 세월을 지냈지만 여전히 견고한 붉은 벽돌로 반듯하게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어릴 적 보던 찌그러진 시골의 초가를 생각하고 놀랐던 적이 있다. 하물며 몇 백 년 전 연암 이 본 충격은 어떠하였을까? 선진적인 청의 문물을 조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바람처럼 이슬처럼

그러나 조선은 중화주의의 관념에 젖어 조정은 물론 백성들 역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연암이 하풍죽로당을 지은 뜻이 여기에 있다. 거창하고 이념
적인 것이 아닌 작은 집을 직접 세움으로써 바람처럼 이슬처럼 조선 사람의 마음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불행히 연암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잇는 것이 후학의 임무다. 연암의 손자 환재 박규수는 조부의 뜻을 이었다. 조부가 연암골에 은둔할 때의 집을 그린 정철조의 빼어난 그림이 있었지만, 환재는 직접 연암골을 새로 그렸다. 사각의 처마를 단 둥근 정자, 이중으로 된 전각과 긴 회랑, 둥근 창을 내고 아자(亞字)로 난간을 만들었으며, 수차의 바퀴에 물이 튀기고 우물에 도르래로 물을 긷는 모습을 그렸다. 원래 연암골에 없던 것인데, 환재가 연암의 실학정신을 그림으로 보충한 것이다.

환재는 연암이 안의에 세운 중국식 건물도 그림으로 그려두었으니, 여기에도 연암의 실학정신이 투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재가 연암의 정신을 투영한 이 두 그림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그림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연암이 남긴 하풍죽로당기를 바탕으로 중국풍의 예쁜 집을 안의에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 연암의 자취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갈 곳이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복원된 하풍죽로당을 보고 연암의 개혁을 생각하고, 그러다보면 몸부림치면서 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개혁에 대한 민심이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바람처럼 이슬처럼 아무도 모르게.


글쓴이 / 이종묵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문화공간』(전4권), 휴머니스트, 2006
           『한국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누워서 노니는 산수』, 태학사, 2002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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