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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과 모기
이 지 양(성균관대학교 강사)
입추며, 처서를 지났는데도 기온이 높은 탓인지 여전히 모기가 밤잠을 설치게 한다. 불을 켜고 여기저기 모기약을 뿌리고 나서 보면 어딘가로 피해서 날아갔던 모기가 다시 돌아와 앵앵거린다. 나는 맘속으로 생각한다. ‘니들 그래봤자 머지않았어. 9월이 되면 모기 주둥이가 꽃처럼 흩어져서 깨물지 못하잖아? 맞지, 니들?’ 하고 모기를 약 올리듯이 말이다.
‘모기의 주둥이는 연꽃 같다 ’ 9월이 되면 모기 주둥이가 그렇게 되는 줄은 18세기 문인 이옥의 글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이옥(李鈺, 1760-1813)의 『백운필』에 ‘벌레이야기[談蟲]’라는 항목이 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바닷가 지역에 모기가 많은데 매양 사람의 피부를 물면, 흉터가 복숭아꽃과 같아지고 가려움을 견딜 수 없다. 가을에 이르면 그 모기 부리가 더욱 독해져서 물린 자리가 대부분 부스럼이 되는데, 9월(음력)에 이르면 부리가 꽃처럼 되어 그 이후에는 모기가 사람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었다.
처음에 이 글을 읽었을 때는 문인 이옥의 자질구레한 것에 대한 관심과 치밀하기 그지없는 관찰, 그리고 그런 것을 기록한 행위에 대해 웃음을 금치 못했다. 대체 모기를 다달이 잡아서 그 부리를 살펴봤단 말인가? 현미경이나 돋보기도 없이 육안으로 그냥 모기 부리가 그렇게 꽃처럼 퍼진 것을 보고 알았단 말일까? 그리고 어쩌자고 이런 것을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했을까? 이 기록의 가치를 스스로 어떻게 부여한 것이지? 이런 궁금증이 일어나서 그 대목이 나의 마음에 인상 깊게 남았다 .
그런데,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제69권「한죽당섭필(寒竹堂涉筆)」 하(下)권에 ‘모기의 주둥이는 연꽃 같다’는 기록 때문이다. “내가 이문원(?文院, 규장각 부속건물)에서 숙직할 때 이문원의 벽에 모기가 많았다. 8 ~9월(음력)이 되면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벽에 앉아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하나의 주둥이 끝이 더부룩한 것이 마치 연꽃 같았다. 이에 비로소 ‘꽃 같은 주둥이[花喙]’라 한 말이 잘된 비유임을 알았다.” 청장관은 오래 전부터 송나라 범성대(范成大)의 시에서 ‘화훼(花喙)’라는 단어를 보고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세히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관찰로 명확히 알게 된 이후에 양신(楊愼)의 『단연록(丹鉛錄)』에서 “이슬이 내릴 때면 모기 주둥이가 터진다.”는 기록을 읽고서는, 옛사람의 관찰이 정미하다고 감탄했다 .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 있는 것이라면 위의 두 기록은 실학적 사고와 관심, 그 실체를 실감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예가 아닐까 한다. 일상생활의 아주 작고 하찮은 것, 정말 모기 같은 존재에 대해서도 실제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우선 그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를 허수히 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에 진주시 명석면 동전마을 구배골에 이상한 벌레가 들끓는다, 그리고 서울 강남에도 애벌레가 너무 많이 번식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나는 그 뉴스를 접하며 저절로 실학자들이 생각났다. 그분들은 이미 300년 전에 수레, 말똥, 벽돌, 기와 부스러기 같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벌레, 모기, 나비, 벌, 꽃 등등에 대해 세밀하고도 진지한 관심을 가졌다. 오직 실생활과 밀접한 것이기에 치밀한 관찰을 하고,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고자 애썼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새삼 자꾸만 실학을 되새김하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 자신이 지금의 현실적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여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인지, 매양 실학자들을 통해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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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지양 · 성균관대학교, 광운대학교 강사 · 논문: 「연암 박지원의 생활 특징과 문화예술사상」(『한국한문학연구』36집, 2005)외 다수 · 번역서(공역): 『역주 매천야록(상)(하)』,문학과지성사,2005 『역주 이옥전집』,소명출판,2001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2000 『조희룡전집』,한길아트,199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