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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혁교과서’의 모범, 『반계수록』/ 신병주

문근영 2010. 11. 22. 16:02

제15호 (2006.9.13)


‘개혁교과서’의 모범, 『반계수록』

 

신 병 주(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 )


조선시대 사상사에서 17세기 중, 후반의 시기는 주자성리학이 대세가 되어가면서도, 이에 대한 비판으로 새로운 학풍인 실학이 대두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 실학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유형원(柳馨遠 : 1622~ 1673)이다. 유형원은 북인이었던 부친 유흠이 인조대에 광해군의 복 위를 꾀하였다는 혐의에 연루되어 사망하자, 관직에 뜻을 버리고 조상 대대로 하사받은 전북 부안의 우반동을 중심지로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의 호 반계는 ‘우반동의 계곡’이라는 뜻에서 따온 것.

개혁 절실한 현실, 실재 현실에 필요한 정책 제시

안정복은 유형원의 연보에서 ‘선생은 당쟁이 횡행할 때 태어나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 저술하기를 즐겼다’고 하여, 유형원이 실학자가 된 것이 당쟁과는 깊은 연관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18세기의 실학자 이익은 특히 유형원을 존경하여 ‘국조 이래로 시무를 알았
던 분을 손꼽아 봐도 오직 이율곡과 유반계 두 분이 있을 뿐이다. 율곡의 주장은 태반이 시행할 만하고, 반계의 주장은 그 근원을 궁구하고 일체를 새롭게 하여 왕정(王政)의 시초를 삼으려했다’고 하여 유형원을 탁월한 경세가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형원’하면 떠올리는 개혁가, 실학자의 이미지는 그의 저술 『반계수록』이 담고 있는 토지, 교육, 과거, 관직제도에 이르는 탁월한 개혁안 때문이다. 『반계수록』은 총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록’은 ‘책을 읽다가 수시로 베껴 둔 기록’이라는 뜻이지만, 치밀하게 사회와 경제 문제를 고민하고 그 대책을 제시한 저자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스스로가 쓴 서문에서 유형원은 개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현실임을 강조하면서, 과거 위주의 공부보다는 실제 현실에 필요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권1~2는 전제(田制), 권3~4는 전제후록(田制後錄), 권5~6은 전제고설(田制攷說), 권7~8은 전제후고설로, 무엇보다 저자가 토지제도에 깊이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국가에서 토지를 농민들에게 고르게 분배하고 환수할 수 있는 균전제(均田制)의 실시로 자영농 육성을 우선할 것을 주장하였다. 권9~10은 교선지제(敎選之制), 권11~12는 교선지설(敎選之說)로 교육과 과거의 문제점과 그 대책을 담고 있다. 유형원은 과거가 출세의 도구가 되어 선비들이 오직 옛 문구만 모으는 것에만 치중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 대안으로 천거제를 주장하였다.

권13은 임관지제(任官之制), 권14는 임관고설, 권15~16은 직관지제(職官之制), 권17~18은 직관고설로, 관직의 정비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유형원은 관료의 임기제를 철저히 지켜 행정의 실효성을 주장하고, 왕실을 위하여 설치된 많은 관청은 대폭 축소하여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의 정책에도 실현되고 있는 ‘작은 정부’의 구상과도 유사하다. 권19는 녹제(祿制), 권20은 녹제고설로 관료의 봉급을 증액시켜 부정이 없도록 하며, 특히 봉급이 전혀 지급되지 않는 하위직 서리에게도 일정한 봉급을 지불하여 백성들을 수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 주목을 끈다. 권21에서 권24는 병제 등 국방과 군사제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병농일치의 군사조직과 함께 성지(城池)의 수축과 무기의 개선, 정기적인 군사훈련의 실시 등을 주장하고 있다.

영조 정조 시대에 가치 인정 받고, 실학의 원류가 되다

1670년경에 완성된 『반계수록』은 저자 유형원이 재야의 학자였던 까닭으로 처음에는 그 가치를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678년(숙종 4) 유형원과 교분이 깊었던 배상유가 상소문을 올려 『반계수록』에서 제시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청하였고, 1741년(영조 17)에는 승지 양득중이 경연에서 『반계수록』을 강론하자는 요청을 하는 등 꾸준히 『반계수록』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마침내 영조 때인 1760년 『반계수록』은 경제에 관련한 탁월한 저술로 인정을 받아 국가에서 3부를 인쇄 간행하였다. 재야 학자의 저술이 사후 100여년 만에 그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정조 역시 『반계수록』에 주목하였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면서 우리나라 학자들의 성제(城制)에 관한 이론을 검토한 끝에 『반계수록』에서 수원에 성지(城池)를 건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주목하였다. 정조는 ‘1백년전에 마치 오늘의 역사를 본 것처럼 논설하였다’면서 유형원을 높이 평가하고, 수원성의 건축으로 그 이론을 실천에 옮겼다.

이처럼 『반계수록』은 유형원이 활동하였던 시대를 뛰어넘어, 영조와 정조 처럼 현명한 군주의 시대에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았다. 또한 이익,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남인 실학자의 개혁 사상의 원류가 되면서, 오늘날까지 ‘개혁교과서’의 모범으로 그 제목을 널리 기억하게 하고 있다.


글쓴이 / 신병주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
· 저서 :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중앙M&B, 2003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돌베개, 2005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실학포럼 초청장

올해는 추사가 돌아가신지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실학축전2006은 추사 김정희 선생을 올해의 축전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추사는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예술가였습니다.
그분이 강조하셨던 學藝一致 정신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실학의 학예일치 문화를 실사구시 한다’를 제목으로
실학포럼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학문과 예술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역설의 진실입니다. 실학자들은 왜 이 역설의 진실을 화두 삼아서
온 몸으로 실천했는지 그 의문을 묻고 답하려합니다.
시서화와 문·사·철의 고전문화 전통이 실학자들에서는
어떻게 창조의 꽃으로 피어났는지 알아봅시다.
실학축전2006은 실학포럼으로 ‘학문과 예술’의 근원을 다시 묻습니다.
실학포럼 장소인 창덕궁 규장각은 정조대왕이 실학의 꿈을
펼치려고 지었던 도서자료관 이었습니다.
이 뜻 깊은 자리에서 우리시대 학예일치 문화의 부흥을 꿈꾸며
실학님들의 지혜로부터 다시 배움 있기를 바랍니다.


○ 발제
  - 유승국(前정신문화연구원장, 동양철학) -기조발제
       : 동아시아 사상에 나타나는 도문일치사상
  - 이지양(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 실학파의 예술론-입속(入俗)과 탈속(脫俗)의 미학
  - 이철희(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추사 시론과 학예일치

○ 토론자
   - 진철승(한국종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이동국(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 시민토론자(실학축전길잡이 박정식)
   - 대학생토론자(김경윤, 김현주, 강철진)

○ 사회자 : 김봉준(실학축전 총감독)
○ 일정 : 2006년 9월 18일(월) 오후2시 ~6시
○ 장소 : 창덕궁 규장각(주합루)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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