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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축구와 영화 / 이승우

문근영 2010. 11. 2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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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영화


월드컵 열기로 대한민국이 들끓던 지난 여름에 프랑스 파리에 열흘 가량 머물렀다. 문학과 출판, 예술계 인사들과 언론사 기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몇 가지 인상이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는 파리 시민들의 월드컵 대회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프랑스가 우리나라와 같은 조에 편성이 되어 있어서 예선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한 채널에서만 텔레비전 중계를 했는데, 프랑스 팀이 경기를 하는 시간에도 카페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붐볐다. 물론 텔레비전이 켜진 카페가 없지는 않았지만, 찾기 힘들었다. 대회 기간 내내 여러 개의 채널이 한꺼번에 나서서 호들갑을 떨어대는 대한민국에서 온 나그네에게 그런 분위기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앙리와 지단과 트레제게 같은 쟁쟁한 축구 스타가 뛰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프랑스 축구 대표팀을 생각하면 파리 거리의 지나치게 차분한 분위기는 축구에 대한 홀대처럼도 느껴졌다.

프랑스인들의 김기덕에 대한 관심과 애정

또 한 가지 인상은 한국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 그네들이 선택한 화제가 영화라는 것이다. 소설가인 나로서는 한국 문학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관심이 그다지 깊지 않은 것이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영화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현상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전국토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한국의 축구 열기와 상관없이 그들은 한국 축구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하기야 세계 최고 수준의 자기 나라 축구에 대한 관심도 그랬으니까 이상할 것이 없다. 내가 만난 프랑스인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사람이 김기덕과 홍상수와 이창동과 임권택을 이야기했다. 그 중에서도 김기덕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유난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독일 쪽에서도 한국 영화, 특히 김기덕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단시일에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괴물’과 관련해서 김기덕 감독이 한 발언을 두고 세상이 조금 시끄러웠던 듯하다. 나에게는 괴물이라는 영화(라기 보다 그런 영화가 탄생하고 소비되는 한국 영화 시장의 구조)에 대한 그의 우회적인 비판보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자기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더 충격적으로 들렸다. 거기에는 작품성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러나 한국 영화 시장의 메커니즘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 예술가의 복잡한 심정이 표출되어 있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그의 영화 세계나 수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언급할 생각이 없다. 그 대신 그런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주류 집단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 영화인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교환가치로 전환해 버리는 자본과 상업주의의 위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또 영화판의 구조나 생리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명쾌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두 달도 안 되어서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건 전국의 상영관 가운데 3분의 1을 점유했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실제로 어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열 개의 영화관 가운데 네 곳에서 하나의 영화를 상영하는 괴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어떤 신작 영화는 개봉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실은 이 나라의 영화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하는 스크린 쿼터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전국의 영화관을 싹쓸이한 것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지 않는가. 김기덕의 신작 영화는 뒤늦게 한 군데 영화관을 얻어 개봉했다고 한다. 상업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 장르의 특성을 생각하더라도 이런 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의 쏠림과 백안시, 불균형 너무 심해

이를테면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염두에 두더라도, 박찬호나 박세리는 물론이고 미셀 위나 하인즈 워드 같은 선수들에게 우리 국민들이 보내는 갈채와 비교할 때 그 차별이 너무 심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외국에서 이름을 알린 사람 중에 한국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자기 자신이 이룬 성과처럼 자부심을 느끼고 영웅 대접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심이다. 물론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경험이긴 하지만, 김기덕 같은 영화인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고 한국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영화판에서의 그의 위치나 작품 세계와는 상관없이, 그는 한국의 가치를 선양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스포츠 선수 정도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여러 영화제에서 중요한 상을 받고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가진 영화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정작 자기 고국인 한국에서는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일본 자본으로 제작을 하고 개봉할 영화관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충무로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국외자를 의아하게 한다. 앞으로 한국에서는 자기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그의 발언은 신중하지는 않지만, 그런 발언을 한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우리도 무조건 좋아하고 대접해 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의 특정 분야에 대한 쏠림과 백안시, 그에 따른 시각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이다. 대중성이나 파급적 효과가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은 반대해야 한다. 문제는 영화나 김기덕 감독이 아니다. 대중성이 약하고 파급 효과가 느리다는 이유로 문학이나 음악과 같은 기초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빠르고 직접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번 여름의 짧은 여행에서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이 스포츠보다 문화나 예술의 영향력을 더 의미 있게 평가하는 세계도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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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승우
· 소설가 /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 1993년 <생의 이면>으로 제 1회 대산문학상 수상
· 대표작 : <심인광고><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미궁에 대한 추측><일식에 대하여>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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