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450년된 풍수지리서 국보급 문화재 될까?

문근영 2010. 11. 22. 16:32

450년된 풍수지리서 국보급 문화재 될까?
김양호 전 M전자 회장 일본에서 귀한 문화재 되찾아와
2008년 02월 29일 (금) 11:35:14 이지수 기자 teriy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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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호씨는 조선중기에 제작된것으로 추정되는 만산도를 디트뉴스24에 공개했다.

“450년 된 역사적 가치보다 만산도에 실린 풍수지리에 관한 내용을 알기 쉽게 책으로 펴내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공개하게 됐습니다”

90년대말 재개 29위에 올랐던 M전자 김양호 전회장이 디트뉴스24를 찾아 국보급 문화재로 주장하는 ‘만산도’라는 풍수지리 고 책자를 최초로 공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만산도(萬山圖)’는 전국의 산천을 답사해 명당자리의 혈을 알기 쉽게 표기한 풍수지리학 서적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풍수지리서적은 고려시대 도선승사가 지었다는 ‘비기(秘記)’ 에서 조선시대 에 발간된 ‘산서’나 ‘결록’ 및 답산가가 및 10여종류의 책이 전해내려 오지만 학문적으로 체계가 정리된 책이 없었고 흡사 토정비결 수준의 책자란 학계의 의견이 대부분이다.

김양호씨는 자신이 입수한 ‘만산도’가 조선시대 중기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만든 풍수지리학 서적으로 국보급 문화재라 믿고 있다. 김씨가 만산도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99년 2월 일본 동경에 위치한 고미술상이였다.

   
만산도는 24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로 68쪽에 걸쳐 상세한 풍수지리의 산세 정보를 담고 있다.

“처음 만산도를 일본에서 본 순간 한 폭에 펼쳐진 산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그래서 한 달을 고민하다 일본인에게 구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본 동경 모리타와빌딩 52층에 위치한 고미술상에 ‘만산도’의 위탁판매를 의뢰한 일본인은 조상대대로 14대에 걸쳐 보관해 오고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아마도 임진왜란 당시 책자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판단했다. 구입을 결심했지만 판매하고자 하는 일본인과의 협상이 어려웠다. 최초 제시 가격을 1억 엔을 요구 했기 때문이다.

과연 만산도가 1억 엔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 김씨는 만산도의 그림이 계속 눈에 아른 거렸다고 한다. 구입을 결심했지만 일본인이 제시한 가격을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일본인 소유주에게 만산도의 출처를 따져 물었습니다. 아무리 조상이 대대로 전해 받았다 해도 약탈품이라면 소유권을 뺏겨 언제가 국가에 기부될 수 있다며 판매하도록 설득을 했습니다”

김씨의 설득에 마음을 바꾼 일본인 소유주는 김씨가 가진 고미술품과 추가금 8500만원에 거래를 승낙했다고 한다. 처음 만산도를 발견하고 27일만에 성사된 거래였다.

무사히 구입에 성공한 만산도 였지만 거래 과정에서 소문이 나면서 이를 확인하고자 하는 일본 언론의 끈질긴 취재요청이 문제였다. 만약 일본언론에 의해 만산도가 공개되면 한국으로의 반출이 불가능해 지기 때문이란 판단이었다.

김씨는 산케이 신문의 취재요청을 뿌리치고 서둘러 한국으로 만산도를 갖고 들어 왔다. 90년대 말 상당히 규모 있던 M전자회사의 회장직함 덕에 공항에서 별다른 검문 없이 무사히 반입할 수 있었다.

   
만산도는 조선중기에 제작된 책자치고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한국에 돌아온 김씨는 일본에서 어렵게 구입한 만산도의 내용을 풀어 책으로 출판하고자 계획했지만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없다. IMF 직후 정부의 퇴출기업 정리가 가속화 되면서 김씨의 회사가 공중분해 됐기 때문이다. 전자회사 정리 후 시간이 흐르고 시넥스 네트워크 회사를 설립해 경영을 하고 손을 떼는 과정을 거치면서 9년의 세월이 지나갔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책을 출판할 만한 경제적 여력도 잃어 버린 것이다.

“공개를 결심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제가 갖고 있기에 벅찼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책에 담긴 귀중한 정보를 널리 알리고 싶어 공개를 결심했습니다.”

공개에 앞서 김씨는 만산도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한국고미술협회 감정을 의뢰했다. 3주간의 협회의 정밀한 심의를 거쳐 조선중기에 제작된 진품이라는 감정서를 받았다.

김씨는 고미술협회가 종이와 먹의 제작년대를 당시의 것으로 판정을 했고 특히 만산도의 저자로 기재된 정언각(1498~1566), 임형수(1504~1547), 이기(1476~1552), 전복창(?~1563), 허자(1496~1551)가 조선중기 역사상 실존했던 고위관료들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원 권선정 교수는 만선도에 대한 기자의 자문에 대해 “지역마다 풍수지리에 관련된 수많은 책이 전해내려 온다. 풍수지리가 일반화 된 것은 조선 후기인데 산세의 형세를 그린 풍수지리서가 조선중기에 있었다니 놀랍다. 풍수지리가 정통학문은 아니 여서 유교가 강한 조선시대 공개적으로 저자들의 이름이 등재 된 것이 흥미롭다”고 언급했다.

만선도의 저자로 쓰여진 인물들은 제작 당시 중추부사, 영의정,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에 재작한 명종때의 고위 관료들이었지만 을사사화(1545)와 정미사화(1547)를 계기로 모두 관직에서 파직돼 옥사를 치른 인물들이다.

김씨는 저자들의 역사적 배경을 들어 자신이 공개한 만선도가 필사본으로 작성돼 책을 만들기 직전의 초벌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월 22일 한국 고미술협회로 부터 받은 진품 감정서와 만산도에 기록된 저자들.

조선시대 고위관료들 사이에 풍수지리는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집을 짓고 조상의 묘자리를 명당에 모심으로 가문의 번영에 큰 영향이 있다고 믿었기에 현대의 부동산투자 못지 않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씨는 만산도의 저자들이 현직에 있을 때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동원해 전국의 산하를 조사해 체계적인 풍수지리서를 만들었지만 을사사화라 정치적 격변기에 숙청돼 책을 간행할 수 없어 필사본 진본만 남겼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만산도의 저자들과 저와는 아무런 혈연 관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볼 때면 400년 전 간행하지 못한 이들의 안타까움이 저에게 강하게 전해옵니다. 책으로 펴내 이들의 한을 풀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김씨는 어렵게 공개를 결심한 만큼 만산도의 가치를 알아주고 이의 내용을 널리 세상에 알려줄 소장자를 찾고 있다. 김씨는 “단지 만산도를 미술품으로 보고 소장하려는 사람에게는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부디 이 책이 좋은 곳에 가서 활짝 피기를 바랄 뿐입니다” 라고 전하고 후지TV를 통해 다시 한번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락처)011-433-2388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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