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봉은사가 팔린다
법정스님 2010/05/07 01:23 蓬生麻中
침묵은 범죄다 - 봉은사가 팔린다.
法頂 (불교신문/ 1970년2월8일-4면)
1.
침묵이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현장의 침묵은 더러 범죄와 동일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승가정신은 첫째 회(會)에 근거를 두고 있다. 모든 문제를 폭력이나 독선적인 수단에 의지하지 않고 이성적인 대화와 설득에 호소하는 것이다. 둘째 의견이 서로 다를때에는 건전하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중지(衆智)에 묻는 것이다. 셋째 승가정신은 배타적인 태도를 지양, 공존의 윤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덕이다.
지난 연말부터 총무원 일각에서는 봉은사 임야와 대지를 팔아 불교회관을 사자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었다. 그것이 요즘에는 거의 실현단계에 돌입하게 되었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18일 종정스님을 비롯하여 청담장로원장, 월산총무원장, 그리고 법안 교무부장을 선두로 한 총무원 간부진 등 우리종단의 원로와 실권자들이 임석한 중진회의 석상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동참자로서, 그리고 현장을 입회한 목격자로서 이견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2.
불교회관 건립은 몇 해 전부터 논의된 우리종단의 염원이다. 그 회관을 세우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봉은사 같은 도량을 팔아서까지 회관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시급한 일인가에 의문이 없지 않다.
봉은사는 잘 알다시피 한국불교사상 영구히 기억될 도장이다. 불교가 말할 수 없이 박해를 받던 이조시절 보우스님에 의해 중흥의 터전이 구축된데가 이곳이며, 서산,사명같은 걸승의 요람이 된곳도 바로 이 봉은사인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거나 또는 불교 중흥의 도량이라는 과거를 무시하고라도, 한수이남에 자리잡은 그 입지적인 여건으로 보아 앞으로 우리 종단에서 다각도로 활용할수 있는 아주 요긴한 도량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제6한강교가 봉은사쪽으로 놓인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발표되자 그 주변의 땅값이 폭등하고, 이해타산에 약삭빠른 업자들이 총무원 문턱이 닳도록 출입이 빈번해진 실정이었다.
그 결과 바로 봉은사 대지와 임야매각으로 낙찰된 것이다. 곁들여 장충단 공원에 있는 ‘공무원 훈련원’을 불교회관으로 사들이자는 착상이 동국재단에 관계하고 있는 몇몇 인사들에 의해 구미를 돋구게 된 것이다. 왜냐면 불교회관의 일과는 관계없이 캠퍼스 확장의 뜻으로 훈련원을 사들이려는 계획은 벌써부터 추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능력이 없던 차 때마침 불교회관건립이라는 대의명분이 결정적인 구실을 해준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것 같지만 바로 이 점으로 해서 종단에서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될 것 같다.
3.
그런데 지금 ‘공무원 훈련원’ 자리가 한국불교발전상 막대한 손해를 치루고라도 놓쳐서는 안 될 그런 위치인가는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뻔하다.
그곳은 동대에서나 필요한 터이지, 우리 종단의 역량이나 처지로 보아 회관으로서는 부적합한 곳이다. ‘막대한 손해’란 말은, 첫째 우리 종단에서 앞으로 유용하게 쓸 도장이 없어진다는 점이고, 둘째는 굳이 가은 땅을 팔 경우라도 제6한강교가 준공된 다음에 처분한다면 지금의 몇 곱을 받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선택된 자리에 우리 뜻에 맞도록 설계된 회관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1천 6백년의 전통을 가진 대종단에서 모처럼 회관을 가지는데 남이 쓰다만 낡은 건물을 사서 쓴다는 것은 종단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눈 앞일만 생각하고 쫓기듯이 바삐 서두는걸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일들이 게재된 것처럼 오해를 초래하기 알맞다.
물론 우리 종립대학인 동대의 캠퍼스가 확장된다는데 이의를 가질 사람은 없다. 허나 오늘날 동대가 타 대학에 비해 하강일로인 요인이 현재의 캠퍼스가 좁아서인가? 동대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면 8억 5천만원(얼마전 공무원 훈련원의 감정가격)이라는 막대한 돈을 들여서 ‘집’을 사기보다는 교수의 자질 향상과 학생들의 학구열을 북돋는 등 인력개발에 그러한 재력을 투자하는 편이 현명한 선택일 것 같다.
이점 운영관리자들의 안목이 아쉽기도 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회관을 갖자는 것은 우리들의 여망이다. 그러나 한국불교발전의 근본적인 저해 요인은 결코 회관의 유무에 달린 것은 아니다. 우리 같이 발심못한 얼치기들이 중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처럼 탐욕과 명리에 눈이 가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줄도 모르는 일부 우....들이 불자 노라 하면서 신..를 받아먹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위 밑줄/ 김지장까페지기님이 법정스님 원고를 옮기는 중 漢字를...
확인되는데로 고칠께요. 스님 법정스님 다시 오소서!
종단을 위해서라면 봉은사 하나쯤 법당까지 다 팔아버려도 아까울 것 없다는 견해는 물론 종단을 아끼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종단’이라고 할 때 추상적인 존재는 아니다. 구체적인 도장 없이 종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
회관을 갖게 되면 그 뒷날부터 당장 한국불교가 중흥될 것처럼 벌써부터 흥분하는 다혈질들이 계시는데, 문제의 열쇠는 그 회관을 어떻게 운영 하느냐에도 달린 것이다. 어떤 교포가 총무원에 쓰라고 보내는 승용차 하나 굴릴만한 능력이 없이 다른 기관에 넘기고 만 작금의 우리 종단 실정을 두고 생각할 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염려 말라’는 호언장담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언론자유가 아니다.
4.
거듭 밝히지만 회관을 갖자는 뜻에는 동조하고 싶다. 그러나 봉은사 같은 유서깊고 장래성 있는 도장을 우리 종단 자체에서 보존 활용하지 못하고 끈덕진 업자들의 입맛에 맡겨 팔아 버리려는 일에는 찬성할 수 없다. 필자가 평생 삼보도량을 지켜야 할 의무와 종단이라는 유형체 속에서 살아야 할 일이기 때문에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봉은사 경내의 임야가 ‘유휴재산’이라 해서 처분한다면 우리나라 사찰림이나 대지치고 유휴재산 아닌게 얼마나 될 것인가. 유휴재산 처분에 대한 지난번 종회의 결의는 이와 같은 맹점을 내포하고 있다.
도장이란 법당이나 몇 채의 요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청정승가가 도량의 전제조건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환경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총무원 측이 획책하고 있는 구상대로라면, 봉은사 소유의 임야 및 대지 13만평 중에 그 6분의 5가 팔리고 나머지 6분의 1이 고작 도량으로서 존속될 모양이다. 이번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수고하고 있는 현직 동국 재단 이사이면서 교무부장인 오법안 스님은, 팔고 남은 봉은사 둘레에 담장을 사주고 식량을 확보하겠다는 등 사후대책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자연인의 인격과는 달리 그동안 겪어온 ‘비구승의 신의’를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5.
우리들의 오늘날 애용하고 있는 삼보재산이 어떻게 해서 마련되고 계승되어 왔는가를 돌이켜 볼 때 거기에는 신심단월의 고마운 희사도 있었지만, 그것을 지키고 가꾸어 온 우리 선사들의 피눈물 나는 ..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는 현재의 유용한 정재를 수호할 의무는 있어도 팔아버리거나 호용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에 따른 몇 가지를 한국불교전체 사부대중을 향해 호소하고 싶다. 첫째 불교회관 건립문제는 급히 서두를게 아니고 시간적인 여유와 자체의 역량을 살펴가면서 널리 종단의 여론을 들어 일을 진행시켜야 하겠다.
둘째 불교회관을 사기위해 한국불교 재건의 터전인 봉은사 경내지를 팔아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유휴재산을 처분하여 한수이남인 봉은사에다 우리 분수에 맞는 회관을 세웠으면 하는 것이다.
셋째 봉은사와 같은 중요도량의 처분 문제는 적지 않은 일이므로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불자들의 최대다수의 의견이 집약되어 역사적인 과오를 초래하는 일이 없어야 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진즉 이러한 뜻을 펼치고 싶었지만 총무원 당국으로부터 문제가 표면화되기 전에는 보류해 달라는 충고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지난 주 재단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마침내 표면화되어 지상에까지 보도 되었다. 봉은사에 살고 있는 대중으로서 이 이상 침묵을 지킨다면 어떠한 범죄적인 오해를 받을지 알 수 없고 또한 승가정신에 입각하여 대화를 나누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아 이와같은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봄한테는 미안하지만
1.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올해는 봄이 더디다고 봄인사를 주고 받는다. 봄이 온다고 해서 별로 기대할 것도 없지만 한 겨울 밀폐된 방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핼쓱해진 화분들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몇가지 이유로 해서 봄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어도 초겨울의 초목이 풍기는 그 말할 수 없이 차분한 계절에 비한다면, 이런 표현이 모처럼 찾아드는 봄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봄을 좋아할 수 없는 그 첫째 이유가 변덕스런 날씨 때문이었다. 잘 풀리는 가 해서 한꺼풀을 벗어주면 금시 쌀쌀한 날씨다. 그런가 싶으면 어느새 활짝 애교를 떨고 있는 것이다. 더러는 뿌옇게 토우를 내리면서 횡설수설 은폐하려 든다. 이와 같이 종잡을 수 없는 봄을 믿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알맞다. 불투명한 이런 계절이 싫은 것이다.
둘째로 나는 체질적으로 봄을 좋아할 수가 없다. 이른 봄철이면 이렇다 할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한 열흘 누워서 앓아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앓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뭐 외롭다거나 어쩐다나 이런 청승맞은 생각은 벗어 버린지 오래지만 예정된 일을 못하고 자꾸만 침..하려는 육신에 더러는 짜증이 나는 것이다.
얼마전에도 예의 봄철 행사를 치러주었다. 다래헌에 누워서 솔바람 소리를 들었다. 남의 일처럼 까맣게 잊어버린 ‘죽음’ 같은 것이 내 자신의 일로 생각키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거나 싫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일인가에도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정말 문제되는 것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달린 것이었다.
2.
지난 2월 이던가 우리절 주지스님이 불의앞에 ‘분신자살’을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상좌들을 모아놓고 눈물을 흘리면서 유언하는 비장한 장면을 보고, 같은 도량에 살고 있던 대중들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우리 종단에서 삼보정재를 지키기 위해 분신자살로서 항거한 일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불의란 10여 만평에 달한 봉은사 임야매각에 따른 총무원 당국의 비승가적인 처사를 가리킨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그 반응은 굉장했다.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부대중들이 격려의 편지를 보내오고, 먼 지방에서 몸소 찾아와 주지스님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남기고 가는 이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수업을 받다 말고 뛰어온 순진한 학생들까지 있었다. 불의 앞에 한국불교의 장래는 그래도 비관적일 수 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편 총무원에 어떤 간부는 서운 주지의 이런 결심을 보고 ‘혹시 노망기가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우리는 적잖이 분개했다.
무슨 동기에서건 ‘분신 자살’을 결심하고 선언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더구나 불자로서 어떤 그릇된 현실 앞에 스스로의 몸과 목숨을 불태우겠다고 부처님 앞에 맹세한 것은, 즉흥적인 쇼맨쉽에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신’에서임은 물을 것도 없다. 이와 같은 결정신앞에 많은 이웃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도 이해 관계를 떠난 순수한 공감에서여서 였을 것이다.
3.
요 며칠전 모 석간지에 최월산 총무원장과 김서운 봉은사 주지 공동명의로 낸 ‘해명서’를 보고 우리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닭 쫓던 개처럼. 그리고 실소를 머금었다. 한편 다행한 일이라고도 생각됐지만. 며칠전까지도 총무원 간부진에서 봉은사 주지의 직인을 위조했다고 해서 김서운 주지스님은 극도의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사주지의 입회없이 자행한 임야의 분할 측량과 수의계약사실에 대해서도 분개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가 ‘사실과는 다른 것’이었다고. 3월 20일 총무원에서 총무원 간부와 봉은사 주지가 뜻을 같이하여 모임을 열고, 원만히 해결되었음을 해명한 것이다.
그렇게 비정했던 결의가 급전직하 한 걸 보고 어떻게 실소를 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필자의 소신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봉은사 같은 유서 깊고 장래성 있는 도장을 팔아서 까지 남이 쓰다버린 건물을 사서 불교회관으로 써야할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된 것은 한 생명이 이제는 분신으로서 비명횡사를 하지 않고 제대로 수명을 누리게 됐다는 점에서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말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본래 중생계의 구조가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급선회하는 인간의 그 심사가 실로 무상하다는 말이다. 당시 행정 책임자의 이런 ‘미묘한 과정’을 거쳐 삼보재산이 팔리는가 싶으니 조금은 슬퍼지려고 한다. 오늘은 날씨가 풀린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함부로 창문을 열지 말아야 겠다. 조석으로 변덕을 부리는 날씨를 따르다가는 또 강 건너 약국의 ‘아스피린’이나 팔아주기 알맞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로 해서 올해는 봄이 더딘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더욱 봄철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모처럼 찾아든 봄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본사 논설위원>
~“30년이 더 된 일이네요. 나도 강남 봉은사 주변 땅을 경기고등학교와 무역회관에 팔 때, 혼자서 반대하면서 외롭게 싸운 적이 있어서 이 사람 맘을 잘 알아요”. 그러면서 “수경스님과 비구니 스님들이 이런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대자연의 의지”라며 수경스님은 대자연에게 위촉받아 대신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 2002/07/16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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