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안성 문화유적지를 찾아서

문근영 2010. 10. 23. 06:58

경기도 안성의 청룡사, 칠장사, 죽주산성, 남사당 전수관을 찾아나섰다.

 

청룡사 대웅전

고려 원종 명본대사가 건립하여 공민왕 13년 나옹선사가 지은 사찰.

조선 선조이후 여러번 고쳐지었다고하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고한다. 이 불전을 고쳐지을 때 목재가 부족했던 형편?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이었으니까. 지금은 곡선의 아름다움이 세월의 무게를 부드럽게 흘려보내고 있는 듯.

 

 

 

삼층 석탑

상륜부는 없어지고 석탑도 부서지고...

 

청동 관음 보살좌상

청동으로 만들어진 점, 얼굴과 신체의 단아하고 사실적인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의 보살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단순화된 구슬 장식 등에서 조선 초기인 1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종

 

 청룡사와 함께 세월을 보낸 이 나무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몸통은 비어있고 한쪽 가지는 부러지고...

 그래도, 싱싱하게 푸르름을 과시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부처님의 힘?

 누석단

충청과 턴라지방에서만 볼 수 있단다.

접착제도 없는데 바람에도 태풍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중생들의 소원을 귀기울여 듣고 있다.

 

으름~~속살은 부드럽드만 ~~씨가 많아서..

며느리 밑싯개와 물봉선 . 맞나???

 

경기도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는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0세기경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과 혜소국사탑과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

사천왕상

 손을 가슴에 얹은 모습이 단아하고 겸손하다.

 

아미타불의 관이 화려하다.

 당집이 부처님을 보호하고 있고.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계단따라 예~쁘게 피었습니다.

 

 

칠장사 혜소국사비

귀부, 비몸, 이수를 모두 갖추었으나 따로 떨러진 채로 보관되어있다.

귀부의 눈이 부리 부리 잘~ 생기셨습니다.

  나옹송

이 나무 역시 한 쪽 가지는 부러지고있어도 참으로 실하게 푸르릅니다.

철당간 지주 _ 절의 위치를 알려준다네요. 저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깃발을 꽂았을까나?

 철 당간지주는 우리나라에 몇개 남아있지 않다네요.

바우덕이 묘

겨울이면 이 곳 칠장사에 와서 공연도 하고 절에서 기거도하며 지냈기에 가까운 곳에 묘를 썼다고.

조선시대 여자로 꼭두쇠가 되어 대원군으로 부터 당상관 정삼품의 벼슬과 옥관자를 하사받은 것으로 유명 하다.

 

 

 남사당 전수관

 이 날은 비가 와 실내공연을 했다. 본 공연은 스탠드가 있는 이 곳에 둘러 앉아 구경한다. 줄타기도 이 곳에서...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지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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