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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 애들이 계속 괴롭힌다. 졸업식 전까지는 몸을 만들어 해 볼 수 있는 만큼 해보겠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 김 아무개군(12)이 급우들의 왕따를 참다 못해 가출하면서 남긴 메모다.
몸을 만들어 돌아오겠다는 결심에, 해 볼 수 있는 만큼 해 보겠다는 복수의 뜻이 황당하다.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랬으랴 싶거늘, 비장한 각오를 ‘작심 삼일’로 접어 다행이다.
왕따, 일본에 일찍부터 있었던 '이지메'와 닮은 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집단폭력에 시달려 자살하는 비극 또한 적잖다. 천둥벌거숭이로 뛰놀아야할 떡잎들의 세계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지 오래다.
아이들이 아니면 웃을 일이 없다고 했는데, 웃음은커녕 섬뜩한 공포를 뿌리는 학교폭력에 어른은 당황하고 애들은 애들대로 떤다. 싸우면서 자라는 아이들의 장난을 넘어 살벌하다.
예전의 쌈질은 그야말로 유치했다. 닭싸움이 따로 없었다. 서로 으르다가 주먹을 휘두르는 단계로 들어갔을 경우, 먼저 코피를 흘리든가 우는 쪽이 지는 걸로 돼 있었다. 한 방에 비틀거리거나 업어치기 ‘잇뽕’(한판)에 나가떨어지듯 땅에 쓰러지는 것으로 당장 결판이 났다.
그건 힘이 비등비등한 저학년 꼬맹이 때 얘기고, 상급 학년에 올라 강약을 겨루는 싸움은 제법 격식을 갖췄다. 공식적인 ‘결투’로 발전하지 말란 법 없다. 장갑 대신 입으로 던진 도전장에 응하면 그만이다.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학교 뒷산 같은 데서 벌이기 마련인 이 대결에는, 쌍방의 세컨드(입회인) 외에 학급 제일의 주먹 대장이 심판으로 나서기 쉬웠다. 결과에 따른 랭킹을 매기기 위해서다.
참관인은 소수로 제한했다. 일종의 밀의(密儀)와 비슷하달까, 선생님의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것이 없는 등급 다툼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패싸움이 없지 않았으나 다른 학교 아이들과 붙었으면 붙었지 안에서는 드물었다. 힘 센 아이는 체질적으로 약한 급우를 감싸는 기풍이 일반적이었다.
아이와 늙은이는 괴는 데로 간다더니 내가 지금 옛일을 빌어 오늘을 탓한 셈인가. 전에는 이러고 저랬다는 소리를 가장 싫어하는 주제에 입에 담기 쑥스럽지만 그 무렵 싸움은 적어도 비겁하지 않았다.
허약한 아이를 윽박지르고 놀리는 행위가 언제는 아주 없었을까마는 일대일로 맞장 뜨는 기개를 지키려고 애썼다. 떼를 지어 누군가를 희롱하고 들볶는 음험한 작태를 보기 어려웠다. 못생겼다고 구박하고,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따위 치사한 행패를 부리지 않았다.
반드시 남의 탓을 하자는 건 아니되 일본에는 일찍부터 ‘이지메’가 있었다. 남한테서 자신의 약하고 못난 부분을 찾아 천대하는 뒤틀린 심보다. 그것으로 자위를 삼는다 이건데, 우리의 따돌림과 똑같다. 요새는 그런 현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란히 간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접할 기회가 많은 현실과 더불어 희한한 닮은꼴을 공유하는 셈이다.
집단아(集團我) 형성, 만만한 희생양에게 덤터기 씌우기 이야기는 좀 건너뛰지만「일본인과 유대인」의 저자 이사야 벤다산은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사건을 ‘동물학적 박해’로 정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핍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인류의 장래를 위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보았다. 반전주의자로 유명한 우찌무라 간조마저 조선인이 쳐들어온다는 데마고기에 대비하여 목도(木刀)를 들고 집 주변을 경계했다면서.
지일파(知日派) 유대인인 그는 모든 박해엔 동물적 요소가 늘 포함된다는 단서를 물론 달았다. 그러나 만만한 희생양에게 덤터기를 씌워 스스로를 달래는 집단의 막무가내 생리야 어디 가겠는가. 미나미 히로시의「일본적 자아(自我)」라는 책도, 일본인의 자아 구조 특징 중 하나는 ‘자기와 집단을 일체화시켜 집단아(集團我)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우린들 얼마나 다르랴. 더하다. 못하지 않다.
가해자 피해자를 불문하고 지나치게 일찍 겪은 심리적 외상과 상처는 어른이 된 다음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국민배우 국민가수로도 모자라 ‘국민 여동생’까지 두고 사는 형편에 지랄맞다. 별난 세상의 못된 풍조가 너무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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