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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에 가보면 다산을 생각하게 해주는 몇 가지 흔적들이 있습니다. 다산의 제자로 대흥사의 마지막 대종사(大宗師)이자 다성(茶聖)으로 칭송받는 초의선사가 거처했던 일지암(一枝菴)이 초옥으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이야 없지만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 대흥사이니, 혹 다산이 일지암을 찾았을 법도 합니다.
그보다는 더 구체적인 흔적으로 유배생활 기간에 그렇게도 가까이 지내면서 시와 차를 이야기하고 불경과 유교의 경전을 깊숙이 토론했던 혜장선사의 탑명(塔銘)을 다산이 지었는데, 그 비문을 새긴 비가 대흥사 경내에 덩실하게 서 있습니다. 다산이 지은 비문이 지금까지 세워져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그곳에 온전하게 서 있는 것을 보면 정말로 반가운 마음이 그냥 솟아납니다.
혜장(惠藏 :1772~1811)은 본디 해남출신으로 성은 김씨며 법명이 혜장이고 호는 연파(蓮波)였습니다. 그러나 다산의 충고로 지은 다른 호를 아암(兒菴)이라 하며 그렇게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18년의 강진 유배생활에서 다산에게 큰 은혜를 준 사람 중의 한 분이 바로 혜장입니다. 귀양살이 5년째이던 44세의 다산은 34세인 혜장과 해후합니다. 30세에 대흥사 불교학술대회의 주맹(主盟)이 되어 불교계에 큰 이름을 떨치던 혜장은 다산을 만나는 순간부터 지동도합(志同道合), 뜻이 같고 도가 합해진 듯, 참으로 다정한 학문적 동지가 되고 시를 논하며 주역을 토론하였고 술을 마시며 평생의 벗이자 사제처럼 지냈습니다.
다산초당으로 옮기기 전부터 만난 혜장은 한 때 강진읍내의 뒷산에 있는 고성사(高聖寺)에서 다산이 거처할 수 있게도 해주었고, 차를 보급해주며 다산을 다인(茶人)의 길로 이끌어도 주었습니다.
다산시집을 보면 40세로 혜장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5~6년 사이 그들이 얼마나 자주 만났고 얼마나 많은 시를 주고받았나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유교와 불교가 만나는 아름다운 학술사도 거기서 이룩됩니다.
아까운 나이 40세로 세상을 떠난 혜장, 그를 잊지 못해 다산은 참으로 멋진 비문을 지었는데, 슬프고 아름다운 그들의 만남이 서술된 비문이 그대로 비에 새겨져 서 있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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