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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257-2 경상북도 기념물 제 16호
[梅鶴亭(매학정) 전경]
매학정은 孤山(고산) 黃耆老(황기로, 1521~1575)와 그의 사위 玉山(옥산) 李瑀(이우, 1542~1609)가 風流(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고산은 서예가 뛰어나서 草聖(초성)이라 하였고 옥산 역시 서예의 대가였다.
[매학정일원 碑(비)]
본관은 德山(덕산). 자는 ??(태수). 호는 孤山(고산), 梅鶴亭(매학정). 조선시대 서예사에서 金絿(김구), 楊士彦(양사언)과 함께 초서의 제1인자라는 평을 받았다.
중종 29년(1534)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벼슬은 별좌를 지냈다. 필법이 뛰어났으며 특히 초서를 잘 써 草聖(초성)이라 불렸다. 그의 서체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만년에 낙동강의 서쪽 寶泉山(보천산) 위에 정자를 짓고 필묵과 독서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梅鶴亭(매학정) 현판]
'근묵' 등에 진적이 전하며,
'觀瀾亭帖(관란정첩)', '大東書法(대동서법) 등에 필적이 모각되어 있다.
금석문으로 전하는 고산의 글씨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중 명종 10년(1555) 충주의 '李承旨蕃碑(이승지번비)'가 유명하다.
그의 저서로 孤山集(고산집), 상정일고 상, 하권이 전한다.
[梅鶴亭(매학정)에서 본 전경]
1533년에 조부의 휴양지에 정자를 지어 매학정이라 하였으며, 후에 사위인 옥산이 물러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54년 옥산의 증손 鶴汀(학정) 李東溟(이동명)이 중건하고 1675년 그 옆에 歸樂堂(귀락당)을 지었다.
[梅鶴亭(매학정) 오른쪽 옆]
이 정자는 남형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으로 쌓은 3층의 기단 위에 막돌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처마끝 서까래가 1단으로 된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1843년 정자 뒤에 세운 梅江書院(매강서원)은 1868년 훼철되어 주춧돌만 남아있다.
[梅鶴亭(매학정) 뒷 모습]
왕희지 다음의 명필이라는 조선조 孤山(고산) 黃耆老(황기로)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할 정도로 천재성을 보인 비범한 인물이셨다.
1519년 기묘사화의 주동인물 조광조의 賜死(사사)를 주청한 아버지의 허물로 인해 스스로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일찌감치 단념하였다 한다.
대신 그는 고향인 선산 낙동강가에 '梅鶴亭(매학정)'이란 정자를 짓고
'梅妻鶴子(매처학자,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아 )' 자연에 묻혀 글씨 하나로 일생을 보낸 은일처사셨다.
[梅鶴亭(매학정) 왼쪽 옆]
실제 황고산의 42세시 모습은 사돈인 율곡 이이(1536~84)가 목격한 바로는
'빈 뜰에 매화송이 피어오르고 깊은 못에서는 학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10여리 떨어진 곳에서 텃밭을 일구는 신선' 같은 사람이었고
'어우야담'에 보이는 송찬의 증언을 빌리면
'내 글씨를 구하는 것이 하루에도 수백장에 달하며 피곤함을 감당할 수 없으니 댁(송찬)의 글씨로 대신해야겠다'고 할 정도로 글씨 노역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梅鶴亭(매학정) 천정]
율곡과 고산은 각별한 사이였다. 고산은 아들이 없고 딸이 하나 있었다.
율곡의 부친 이원수는 을사사화때 성주로 유배 된 李文楗(이문건)과
친하게 되었고 그 뒤부터 율곡은 성주를 왕래하였다.
율곡은 이런 과정을 통해 황기로와 교제하게 되었다.
성주목사 노경린의 따님과 혼인한 율곡은 성주에 왔다가 칠곡 약목을 거쳐 구미를 지나 도산에 퇴계 선생을 뵈러 가던 길에 당연히 고산 매학정을 찾았다.
이러한 교제가 끈이 되어 훗날 율곡의 아우 옥산 이우가 고산의 사위가 되었고, 고산이 거처하던 매학정은 옥산에게로 전해졌다.
.jpg) [삼문삼대항일행적비]
고산은 일찍이 慕齋(모재) 김안국의 찬탄을 받았고, 그와 중국에 들어가 당나라 서법가인 張旭(장욱)의 필법을 전수하게 되어 해동명필로 인정받게 되었다.
어릴 때 조부 상정으로부터 주역을 전수했고 퇴계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33년, 조부 상정의 유허지 고산에 정자를 지어 매학정이라 이름하고 강호에 자취를 감춘 후 문을 걸어 닫고 주역을 읽으며 글씨에만 전념하니, 강물이 온통 검게 흘렀다고 윤영섭이 쓴 행장에 전한다.
고산이 초성으로 칭송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낙동강과 다리]
옥산이 읊은 매학정 시조 한 수 올려봅니다.
君問我家何處住(군문아가하처주) 그대가 나의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依山臨水掩荊門(의산임수엄형문) 산 의지하고 강물에 임하여 사립문 닫힌 곳이라 말하리
有時雲淡沙場路(유시운담사장로) 때로는 구름 맑아 모래밭에 있노라니
不見荊門只見雲(불견형문지견운) 사립문 보이지 않고 다만 구름만 보이네
[사진. 글 / 草阿(초아) 박태선(안내판과 인터넷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