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람재에 세워놓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시비
<길가의 소나무(路傍松)>
|
一老蒼髥任路塵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길가에 서 있어 勞勞迎送往來賓 괴로이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 歲寒與汝同心事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
經過人中見幾人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느냐
|

♣ 현풍에서 도동서원을 찾아가는 길의 마지막 고개인 다람재

♣ 다람재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과 낙동강

道東書院
소재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 (보물 제350호)
도동서원은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동방 5현의 한사람으로 추앙되는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원래는 1568년 현풍 비슬산 기슭에 사우(詞宇)를 지어 향사를 지내오다가 1573년 쌍계서원(雙溪書院)으로
사액되었으나 임란에 전소하였다. 그후 1605년(선조 3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지금의 자리에 창건되어
김굉필의 위패를 모셨다. 1607년 ´도동´(道東)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678년(숙종 4)에 정구(鄭逑)를 추가 배향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김굉필과 정구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祠堂), 원내의 여러 행사 및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한
중정당(中正堂), 유생들이 기거하던 거인재(居仁齋)·거의재(居義齋) 외에 수월루(水月樓), 환주문(喚主門),
내삼문(內三門), 장판각(藏板閣),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으며.
일부 건축물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 도동서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문인 외삼문과 누각으로 이루어진 수월루

♣ 김굉필나무라 불리는 도동서원 앞 은행나무



♣ 환주문(喚主門)
강학공간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한 칸의 작은 일각문인데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지붕 꼭대기에는 절병통이 얹혀 있다. 이는 빗물의 누수를 막기 위해서 얹어 놓았다. 문 밑에는 꽃모양의 버팀돌이 설치되어 있다.


♣ 기단 전면 갑석 바로 아래에는 물고기와 여의주를 문 네 마리의 용이 머리만 내밀고 있는 조각이
튀어나와 있다. 이곳이 낙동강의 흐름 중 강폭이 좁아지고 물이 돌아나가는 곳이라 수해가 잦았던 탓에
수재를 예방하는 액막이용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용은 물의 신이라 화재 예방의 의미도 담고 있다.

♣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원장과 선생이 기거하면서 강학 및 강의하던 공간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 반 주심포 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이며 그 좌우로 온돌방을 들이고 온돌방 앞에 마루를 놓아 대청과 연결시켰다.

♣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원장과 선생이 기거하면서 강학 및 강의하던 공간으로 이 날이 마침 향사를 지내는 날이어서
옛 유생들처럼 의관을 정제한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다.





♣ 중정당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서면 좌우측으로 서재가 있는데 거인재(居仁齋)와
거의재(居義齋)라 이름 붙인 것을 보면 유교의 중심 사상인 인의(仁義)를 강조한 듯싶다.



♣ 장판각(藏板閣) 강당 동쪽에 한 단 낮은 대지를 조성하여 지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로
한훤당의 景賢錄 목판본을 보관하던 곳이다. 지금은 이 목판본을 유물전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중정당의 뒷뜰,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보인다.

♣ 내삼문 앞에 이른 자리에는 중정당 앞처럼 돌거북의 머리가 하나 놓여있다.

♣ 향사를 지내기 위해 깨끗이 청소하고 차일을 쳐 놓은 사당의 전경

♣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지게

♣ 생단에 묶여있는 향사에 제수로 쓰일 돼지,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 牲壇 강당 서쪽에 사각형의 돌기둥 위에 정사각형의 상석을 놓은 것이다. 생단은 犧牲(서원의 경우 주로 돼지)을
품평하는 단을 말한다. 도동서원에서는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는데 향사지내기 전 날
산 돼지 한 마리를 생단에 얹어 놓고 생단 서쪽에서 선축관이 희생이 정결한가를 “腯”하고 물으면
헌관이 좋으면 “充”하고 그렇지 않으면 “不”이라고 하는데, “충”하면 의식이 끝나고 제수로 준비하게 된다.
현존하는 생단 가운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교하고 아름답다.



♣ 개나리와 진달래도 활짝 피고...


♣' 비슬산용연사자운문'이라 쓰여있는 용연사 일주문


♣ 용연사 앞 계곡물에 비친 나무들의 모습...한 폭의 수채화 같다.


♣ 용연사 3층 석탑(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8호)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 용연사 극락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을 말하며, 용연사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지금의 극락전은 1728(영조 4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 용연사 극락전 앞에 있던 두꺼비, 두꺼비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대나 어쩐대나...
시집·장가도 안간 옛총과 박총, 영빈이까지 만지고 올라타고 난리법석이었다는...ㅋㅋㅋ


♣ 용연사 천왕문 아래 음수대 옆에 만들어 놓은 악어 한마리...누가 어떤 생각으로 그 자리에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 것 같다...

♣ 용연사 부도전

♣ 용연사 석조 계단(戒壇) : 보물 제 539호
계단(戒壇)은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여하는 식장으로, 이 곳에서 승려의 득도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의식이 행하여 진다. 용연사 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이 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의 부처 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한다.

♣ 계단의 기단에 새겨져 있는 팔부신중상

♣ 사천왕상

♣ 계단 옆에 세워져 있는 이 석가여래비에는 석가의 사리를 모시고 이 계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계단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