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조선 왕릉, 세계 문화유산 등재

문근영 2010. 9. 11. 08:51
조선 왕릉, 세계 문화유산 등재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조선왕릉’ 40기 전체가 26일(현지시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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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40기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이 신청한 `조선왕릉`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첫째줄 왼쪽부터 정릉(사적 제1대 태조계비 신덕왕후 강씨), 경릉(제9대 성종사친 덕종 및 소혜왕후 한씨), 창릉(제8대 예종 및 계비 안순왕후 한씨), 명릉(제19대 숙종 및 계비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서울=연합뉴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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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봉분에 웬 억세풀?
조선왕릉에 얽힌 뒷이야기들

조선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만큼 왕릉에는 왕조 519년의 역사가 오롯이 들어가 있다. 하나하나마다 품고 있는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 태조의 무덤엔 태종의 반성이

=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은 잔디 대신 억새로 떼를 입혀 갈색으로 보인다. 이 사연 뒤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벌어진 애처로운 반목이 숨어 있다.

태조는 말년에 계비 신덕왕후를 매우 사랑했고, 죽어서도 그녀 옆에 묻히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권좌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의 소원을 끝까지 무시했고 결국 태조를 홀로 건원릉에 모셨다. 이후 잘못을 뉘우친 태종은 아버지 고향인 함흥의 억새풀을 가져다 봉분에 심고 깍듯이 예를 갖췄다고 한다.

◆ 풍수 때문에 옮긴 세종의 영릉

=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은 여주에 있다. 하지만 그와 부인 소헌왕후 심씨가 묻힌 무덤의 원래 위치는 경기도 광주였다. 하지만 세종의 죽음 이후 큰아들(문종)은 일찍 죽고 손자(단종)는 작은아버지(세조)에게 왕의 자리를 뺏기는 등 좋지 않은 일이 계속 벌어졌다. 그러자 세종의 묘자리가 좋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고 능을 옮기자는 여론이 일어났다. 결국 세종의 무덤은 1469년(예종 1년) 현재 위치로 옮기게 된다.

영릉의 `좋은 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조선왕조는 제9대 임금 성종을 만나며 기틀을 잡는다. 바로 그 뒤에 연산군이라는 `최악의 폭군`이 등장했지만 말이다.

◆ 정조의 지극한 효심, 융건릉

= 경기도 화성의 융릉, 즉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묘는 정조의 효심이 담긴 결정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뒤주 속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원을 풀어주고 복권의 상징으로 융릉을 세웠다. 정조는 지금 서울시립대 근처에 있던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성으로 옮긴 후에도 틈틈이 참배했다고 한다. 정조는 죽어서도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융릉 근처에 건릉을 만들어 곁을 지켰다.

◆ 단종의 비운이 서린 장릉

=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은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한(恨)이 서린 곳이다. 작은아버지인 세조에게 쫓겨나 서인(庶人)으로 강등된 단종은 1457년 이곳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쳤다. 왕도 아니고 `노산군`이었던 그의 시신은 영월에 있는 산기슭에 초라하게 묻혔다.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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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17:30:06 입력, 최종수정 2009.06.28 20:48:51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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