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관용사회`가 관용해서는 안 되는것 / 성유보

문근영 2010. 9. 5. 07:06
 ‘관용사회’가 관용해서는 안되는 것
  글쓴이 : 성유보     날짜 : 07-02-13 09:16    
박정희씨의 ‘유신시대’였던 1970년대는 ‘긴급조치 시대’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긴급조치 1호’와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을 비판하거나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것, 그러한 주장을 전파하는 행위를 금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긴급조치 1호’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들은 민간인인 데도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긴급조치 9호’도 ‘긴급조치 1호’와 별 차이가 없었으나 재판관할권만 군법회의에서 일반재판부로 넘겨졌다.
 
‘긴급조치 시대’, 이 포고령과 국가보안법, 반공법 등을 함께 섞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잡아가고 징역살리고, 고문하고 해고시켰던가?
 
‘관용사회’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청산
 
최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에 간여했던 판사들 명단을 공개한 것을 두고 찬반 여론이 요란하다. 한쪽은 “진정한 화해란 진실에 바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실정법에 따른 어쩔 수 없었던 행위”, “왜 30년 전 과거를 들추어 갈등을 부추기는가?”라고 항변하고 있다.
 
필자는 이 토론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한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원주의 사회이다. 다원주의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관용’이라는 열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민주주의적 관용사회’가 결단코 관용해서는 안 될 한가지 정치행태가 있다. 독재자, 또는 독재세력이 힘으로 지배하고 통치하려는 사회이다. 독재세력은 말도, 정보도, 폭력도, 독점하려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절대왕정과 공존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군국주의자를 관용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 사회가 국민들의 저항권을 고집스레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용사회’의 모델이라고 할 만한 프랑스가 1945년 세계 제2차대전 직후 이 문제에 부닥쳤다. 나치 협력자 숙청 문제였다.
 
필자가 늘 존경하는 주섭일선생은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청산>이라는 저서에서 알베르 카뮈와 프랑소와 모리악의 주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카뮈는 반 나치 저항신문 ‘콩바(전투)’지에,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할 수 있는가?···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이다’라고 기고했다.”
 
“모리악은 ‘르 피가로’지에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에게는 과오를 범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 모두가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기고하면서 관용을 위한 여론을 불러일으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2차대전 중에 ‘자유 프랑스’라는 망명정부를 이끌었던 드골은 단호한 단죄에 나섰고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들은 드골을 지지하였다. 나치 협력자 문제는 개개인의 과오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재확립 문제, 군국주의자들과 그 공범자들 및 그 사상의 청산문제, 그리고 민족반역자 청산문제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숙청재판소는 총 5만여 건에 대해서 유기 강제 노동형, 종신 강제 노동형, 금고형, 사형선고를 내렸고 실제로 800명 가까이가 사형되었다고 한다. 이 대숙청에는 사회 지도층, 고위 군부, 정치인들, 언론인들, 방송인들, 출판인들, 영화인들, 작가, 예술인들이 총망라되어있었다고 하며, 이와 별도로 시민법정도 4만5천여 명에게 부역죄의 형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해방 직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러자 친일파들은 이승만독재에 편승하여 다시 득세하였다. 파리 해방을 위한 시민 봉기 때 파리 경찰이 앞장섰던 데 반해서 남한에서는 제한국회의 ‘반민족행위자 처벌 특별위원회’에 대한 이승만의 탄압에 일제 때의 고문경찰들이 앞장섰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독재세력에도 저항할 것을 다짐해야
 
군국주의와 독재에 대한 이러한 불감증이 이승만의 장기집권, 박정희의 쿠데타와 유신체제, 전두환의 ‘피의 정권’을 낳았다. 그 후유증으로 한국사회가 이 정도 민주사회를 이루는 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땀과 피를 바쳐야 했다.
 
그러한 엄혹했던 시절, 혹은 ‘개인적 출세를 위해서’, 혹은 ‘실정법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독재의 공범자가 되어버린 각 분야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우리 국민들이 요구해야 하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형식적 반성과 사과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단호한 다짐과 약속이어야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다짐의 내용인즉 대체로 이런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실정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재의 공범자가 된 과거의 어떤 행위들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민주주의가 결코 후퇴해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에라도 어떤 독재세력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려고 한다면, 굴종하지 않고 다른 시민들과 함께 저항할 것이다.”
 
카뮈가 60여 년 전에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이다”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글쓴이 / 성유보
· 언론인
· 한겨레신문사 초대편집위원장
·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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