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당(朋黨)의 엄청난 폐해 |
| 글쓴이 : 박석무 날짜 : 07-02-23 09:17 |
| 민주주의 국가는 정당정치여서 건전하고 올바른 정당끼리
정책대결을 통해 국가의 정치발전을 이루는 일이야말로 모든 국민의 바람이자 시대적 요구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나라꼴은 정당은 없고 붕당만 판을
치면서 탈당에 분당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붕당 내부끼리 서로 싸우느라 백성을 하늘로 여기는 정당정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산이 활동하던 200년 전의 조선시대에도 정당은 없고 붕당만 판을 치면서 패악한 정치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더욱 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파와 벽파라는 붕당싸움에 얼마나 많은 실학자들이 죽어갔고 귀양갔으며,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핍박을 받아야 했던가요. 다산도 18년이라는 긴긴 유배살이로 모진 불행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 바로 붕당싸움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대체로 국가에서 어떤 편찬사업이 있을 때마다 붕당의 이해에 끌려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취사선택을 그르치는 일이 많으니 이것이 지리서(地理書) 하나에도 아직 신뢰받을 만한 결정판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每有編纂 雜以朋比之見 潛逞取舍之私玆所以地理書一部 尙無名世之編也 : 地理策)라고 붕당싸움 때문에 올바른 역사책은 말할 것 없이 지리책 하나 제대로 나오지 못했음을 다산이 한탄했던 부분입니다. 때문에 다산은 붕당싸움이 한창이던 시대의 모든 문자(文字)는 신뢰할만한 것이 많지 않다고 확언합니다. “대저 붕당이 갈라진 이후로의 문자(文字)의 대부분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이와 같습니다”(大抵朋分以來 文字之多不可盡信 有如是矣 : 與李汝弘)라고 말하면서 우암 송시열과 그의 반대편인 백호 윤휴와의 격한 논쟁이 있던 무렵의 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1801년 신유교옥의 기록이나, 정여립사건 당시의 기축옥사(己丑獄事)기록 같은 것이 다 믿을 수 없는 기록이라는 뜻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진실을 숨기고 역사를 오도시키는 붕당싸움, 누구를 믿으며 누구를 신뢰할까요. 길고 긴 붕당싸움, 언제쯤 건전한 정당정치로 제대로 돌아올까요. 안타깝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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