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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문학인들의 단체 이름으로 여러 의견이 나오면서 상당히 시끄러웠습니다. ‘민족’을 떼어야 하느냐, 그대로 두어야 하느냐, 아니면 달리해야 하느냐의 논쟁이었지만, 그 실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그에 대한 평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작가는 단어 하나를 떼어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이제는 그런 단체는 깃발을 내리고 해체하라고까지 막말을 하는 사람이 있게 되었으니, 세상에 변해도 한창 변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어둡고 답답하던 독재 시절에 강골의 문인들이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구성하여 시와 문(文)으로 독재에 항거하고 실제 몸으로 반독재 투쟁대열에 서서 구속과 투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때에, 그 집단의 힘이 얼마나 중요하고 민중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던 것인가를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독재도 물러갔고 자유와 인권도 상당히 보장되었으니, 이름을 바꾸어 문학의 질적 변화를 시도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또 그렇게 탓할 수만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어떻게 해야 더 질 높고 진정한 문학의 발전이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다산은 뛰어난 시인이며 탁월한 선승이자 학승이던 초의선사에게 주는 글에서,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본래의 뜻이 저속하면 아무리 맑고 고상한 말을 하여도 조리에 맞지 않는다. 본디 뜻이 편협하고 비루하면 억지로 달통한 말을 하여도 일의 물정에 절실하지 못하게 된다. 시를 배우면서 그 뜻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걸러내는 것과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특별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서 평생 노력해도 얻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인(天人)·성명(性命)의 이치도 알고 인심(人心)·도심(道心)의 나뉨을 살펴 찌꺼기를 걸러 맑고 참됨이 발현되게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도연명이나 두보와 같은 시인이 되는 것이지, 문학단체에나 어울려 지내고 옛날에 독재와 싸운 투사 문인이라고 자랑만 한다고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다산은 마침내 무서운 경고를 내렸습니다. 예술이란 결코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부적으로 타고나야지 또 배운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得之天賦 又非學焉者 所能
也)라고 초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노력하고 배운다고 해서 끝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예술. 예술가들인 작가들, 마음을 비우고 경건하게 단체이름을 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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