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광해군묘

문근영 2010. 8. 20. 09:39

<광해군묘>

 

조선시대의 묘제에 있어 왕실의 묘는 릉, 원, 묘로 구분됩니다.

"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고
"원"은 왕의 사친(私親) 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
묘는 대군 공주 옹주 후궁 귀인등의 무덤으로
위계에 따라 그명칭을 다르게 정한 것입니다.

 

광해군...

왕좌를 15년이나 지켰지만, 조카의 쿠데타로 왕위에서 ?겨납니다.

묘 역시 릉이 아닌 광해군묘...

지난 여름에 그 광해군묘를 찾았습니다.

 

광해군묘로 가는 길의 이정표...

한 교회 망인들의 영혼이 쉬는 동산의 정문옆 초라한 이정표가 대조적으로 비스듬히 세워져 있습니다.

광해군묘는 영락교회 동산이라는 정문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잠깐 한 눈을 팔면 놓쳐버리기 쉬운 이정표...

 

이곳은 사적 363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 관리가 어떤 실정인지 그 한 단면도 볼 수 있습니다.

 

광해군묘로 들어가는 출입문...

조선왕릉의 묘는 관리소가 위치해 있고 주차장도 구비가 되어 있으며 ... 출입구또한 관리사무소에서 엄격히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광해군묘는 격이 달라서인지...

주차장도 없고..출입구는 철망문으로 조성이 되었으며 관리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사릉지구에서 하는 실정입니다.

조선의 한 역사를 장식하던 왕이였지만,

빼앗긴 권력의 끝은 현세에서도 한 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봅니다.

 

철망문을 열고 조심스레 몇 발자욱 움직이면 작은 산길이 나옵니다.

광해군묘로 이어지는 소길입니다.

 

작은 길 중앙에 바위와 소나무가 겹쳐진 부분에서 건강에 좋다하는 운지버섯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작은 길을따라 걸으면 광해군묘의 뒷 모습을 먼저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

문화재라 불리우는 광해군묘를 뒤에서부터 접견이 되도록 방치를 했을까요?

일반 묘들중 묘의 뒤부분에서 먼저 뵙도록 조성한 묘는 보지 못했습니다.

 

광해군묘는 쌍분묘 형식으로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유씨의 봉분이 나란히 있습니다.

병풍석과 난간석같은 석물들이 조성되지 않는 일반 묘처럼 봉분만 있고

봉분 앞에는 비석.상석.장명등이 있으며 묘옆에는 망주석과 문인석만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무인석은 세울 수 없었겠지요...

무인석은 오로지 왕릉에만 세울 수 있는 석조물이기때문이지요..

<조선시대의 무인석>

무인석은 군사를 뜻합니다.

군사의 의미는 병권을 포함하고 있겠지요..병권은 조선시대에 왕 스스로 지킬려 노력을 했고

아무리 신망이 두터운 충신이라해도 양보하지 않았던 병권....

오로지 왕만이 군사를 거느릴 수 있었기에....

왕릉에서만 세울 수 있는 무인석.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에서도 무인석은 볼 수 없지요....

권세있는 사대부 집안에서도 묘의 형식을 왕릉 수준으로 하였는데...

무인석만큼은 생략했다고 합니다...무인석을 세우면 바로 역모로 다스려지게 됩니다.

왕권의 상징물이였던 무인석...

조선왕릉에서는 용맹과 기상을 갖춘 태종 이방원의 조영무 무인석처럼 뚝심 있게 생긴 것을 최고로 쳤다고 합니다.

 

 

사적 363호 광해군묘라는 작은 비석이 곡장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은 비석인 듯 합니다..

 

 

왼쪽의 망주석 모습을 보니 꼭대기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장명등도 여기저기 파손된 부분이 보입니다..

왼쪽의 문인석의 표정은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하는 듯한 묘한 인상을 풍기는 듯 합니다.

 

비석에는 <광해군지묘>라는 아주 간단하게 다섯글자가 새겨져있습니다.

 

릉이였다면 비석이 당연히 비각에 있어야 되는데...

바로 봉분앞에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석 앞에는 상석이 놓여져 있습니다.

상석의 다리는 두개..한쪽은 아예 봉분앞 장대석에 괴어져 있습니다..

이런 묘 형태는 일반묘보다 더 못하다는 것을 어린아이들도 느끼겠죠...

조선을 호령하던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좌측 곡장의 모습입니다..

곡장에 무슨 순찰함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시멘트로 땜질을 해놓은 모습도 보이네요...

 

오른쪽 곡장 내부의 모습입니다...

시멘트로 땜질을 한 모습이 흉칙스럽게 다가옵니다.

 

 

문화재 사적 363호의 현실은 이지경입니다.

곡장의 기와는 거미줄로 뒤엉켜 흉물스럽기 그지없고 곡장은 시멘트로 아무렇게 발라놓아서 해괴망측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광해군묘....

조선이라는 역사에 버림받고...그 후손에게까지 외면당하는 현실.....

우리는 국보 1호인 남대문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에...

많은 분들이 눈물 흘리던 모습을 티비에서 보았습니다.

국보 1호와 사적 363호....숫자만 다르지...

엄연히 같은 문화재입니다...

큰 문화재만 보호하면서, 다른 문화재는 외면하고 관심없고 보호도 소홀히 하는 우리의 모습...

문화재 관리의 현 주소인 듯 합니다.

광해군묘의 관리는 문화재청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남양주시의 지자체가 관리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광해군의 후손들께서 관리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선왕릉은 학습의 현장으로 많은 분들의 방문을 하도록 안내서와 함께

해설자까지 계시는데...어찌 이곳은 학습의 현장도 되지 못하는 것인지....

말문이 막힙니다....

 

광해군묘의 위에는  영락교회의 동산입니다..

그곳에는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놓은 망인들의 산소가 아파트 형식으로 꾸며져 있고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망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찬양가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 아래 광해군묘....

우리의 문화재는 이렇게 볼품없이 버려진 채 외면 당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구름은 무심히 한 역사의 왕이였던 묘위를 흘러만 가고 있습니다.

문득....

생각나는 것 하나...

광해군묘는 영락교회 동산의 정문과 길을 거쳐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광해군묘 가는 길을 영락교회 동산측이 빌려 이용을 하는 것일까요?

아님 영락교회 동산 가는 길을 광해군묘가 빌려 쓰는 것일까요??

지금도 아리송합니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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