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양록」,
18세기
조·중(朝中) 음악 콜로키움
이
지 양(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열하일기』의
「망양록(忘羊錄)」편은 연암과 중국인 학자 왕민호(王民
)·
윤가전(尹嘉銓),
이 세 사람이 양국의 음악문화에 대해 매우 자유롭게 심층 토의를 한 기록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학계의 콜로키움(colloquium) 녹취록
같은 글이다. ‘망양록’이라는 제목은 옛날과 지금, 중국과 조선의 악률(樂律)의 같고 다른 점을 이야기하느라 구운 양고기 음식을 차려 놓은 지가
오래지만 서로 먹으라고 권하지 못했던 것을,『남화경(南華經)』에 나오는 일화 - 장(臧)은 글을 읽다가 곡(穀)은 노름을 하다가 둘 다 양을
잃었던 일화 -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옛
음악을 말하는 자, 본질 아닌 형식만 흉내내니…”
연암은
탐구심이 만발하여 온갖 의문을 제시한다. “아악(雅樂)과 속악(俗樂)의 구별이 없을 터인데, 시대마다 각각 음악과 풍아(風雅)가 변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음(音)에 선악(善惡)이 있을까요? 궁음(宮音)처럼 광대하고 웅심한 것은 선(善)이요, 상음(商音)같이 조급한 소리나
치음(徵音)같이 빠른 소리는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아악은 어떠한 것입니까?”,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란 근자에
보는 ‘서상기(西廂記)’같은 잡극입니까?”, “옛날 음악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말까요?”, “공자가 위(衛)로부터 노(魯)에 돌아와 시를
정리하고 예를 바로잡을 때에, 어찌 홀로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저술한 것이 없을까요?” 등과 같은 내용의 질문이다.
이런
의문들에 대해 서로 토론하면서 왕민호(王民
)는 연암더러 “선생은 퍽이나 옛것을 좋아하는 주장이십니다” 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옛 음악을 말하는 자들은 본질을 말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흉내만 내니, 음악은 필경 옛날의 고아한 것은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요지의 답을 한다. 윤가전(尹嘉銓)은 공자가 따로 음악을
정리한 것은 없지만, “시를 정리하고 예를 바로잡았다는 것이 곧 악학(樂學)입니다”라고 답한다. 음악의 본질이 시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언어로 사람을 가르칠 때는 그 물정이 그릇되기 쉽고, 문자로 사람을 가르칠 때는 그 기(天機)가 얕으니, 음악으로 은근히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며 좋은 음악으로 풍속을 교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연암의 질문은 그대로 표현만 바꾸어 지금의 음악 콜로키움의 안건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문제의식이 날카롭고, 그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대답과 질문, 연암의 답변과 추가 질문 또한 흥미진진하다. 오늘날 전통문화와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망양록」은 하나의 중요한 참고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적
정서적 공동체 & 문화다양성 협약 : 오늘날은
누구나 현대인의 대열에서 홀로 도태될까 두려워하는 강박증이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그것은 개발도상국일수록, 약소국일수록 심하다.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와 추억, 전통 등을 미련 없이 버리는 증세 말이다. 급기야는 유네스코가 현대의 문화 획일성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서 각국
전통문화를 존중하자는 ‘문화다양성 선언’을 하고, 그것을 ‘국제 협약’으로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너나없이,
광케이블의 속도로 전통 문화를 망각, 폐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해 저절로 소멸되고 있는 전통문화를 굳이 보존, 계승 발전시켜야 할까? 그렇다! 보존은 전공자의 차원에서, 계승 발전은 일반 생활문화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왜? 그것은 문화정체성의 문제이므로 존재의 건강한 소속감 및 안정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란 현재에도
형성 진행중이지만, 과거와 소통하며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동의 기억, 공동의 체험을 떠난 공동체는 존재 불가능하며, 그것은 현재 생존방식의
질과도 깊은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통음악은 한 집단이나 민족이 공유하는 가치와 역사적 유산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그러므로 전통음악은
사회적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문화 형태의 하나로 사람들 가슴 속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을 움직인다. 이런 전통음악을 계승하지 않는 것은 그
사회적 손실을 다 계산해낼 수 없다. 전통음악은 정서적 구심점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아마 문화적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해내지 못하면, 오직 이해타산에 의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만 잘게 분열된 기괴한 사회가 되어버릴 것이다.
전통음악에서
핵심적 요소를 추출, 현대적 방식으로, 생활 속으로
문화DNA
& 법고창신(法古
新) :
그러면 어떻게 계승할까? 전통음악을 고스란히 계승할 수는 없다. 여기에 대해 연암의 ‘법고창신’론을 적용해 본다.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문화유전자’를 가지고 우량종으로 발전시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음악의 경우, 토착음악을 좀 더 현대적인 음악과
결합하여 이른바 ‘퓨전음악’ 내지는 ‘하이브리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현대적 분위기를 물씬 풍길 수 있는 전통 음악을 찾아 생산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전공자들이 전통음악 보존에 철저할 것과 함께, 다른 종류의 음악에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이중으로
요구된다.
여기서
‘한국 문화DNA’라는 개념을 제시해 본다. 음악의 경우, 그 개념을 우리의 전통음악에서 핵심적 요소를 추출하여 그 요소 하나를 현대적 방식으로
옮겨오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싶다. 판소리를 예로 들면, 판소리 그 자체를 오늘의 대중에게 부르고 들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판소리의 발성창법, 박자, 리듬, 아니리, 언어 표현방식, 추임새, 등등의 요소를 한 부분씩 떼서 오늘의 음악에 그 본질을 성공적으로 이식해
넣을 수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현재적 표현력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면서 과거를 추억하는 훌륭한 역할을 해내게 만들 것이다. 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전 국민이 살풀이 춤이나 탈춤을 출 수는 없지만, 한국의 발장단과 어깨춤의 기본 동작 몇 가지를 오늘의 정서에 맞게 안무해서 향유할
수는 있다. ‘꼭지점 댄스를 즐기듯’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전통음악과
전통춤을 생활 속에 부분적으로 수용하게 만들고 향유하게 만듦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심고, 자연친화적 생활감각, 그리고 순화된 정서를 길러 나가야
한다. 현재 그 나라 국민이 향유하지 않는 문화에는 문화 정체성, 문화 유전자, 문화자주권이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의 공동체의식이란 고작해야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에 불과할 것이고, 문화다양성 협약에 국회가 비준하더라도 지켜가야 할
내용이 없는 껍데기 비준에 불과할 것이다. 연암이 “옛날 음악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말까요?”라는 자문(自問)을 하고, ‘법고창신’이라는
자답(自答)을 이끌어냈던 것을 오늘에 다시 되짚어 본다.
글쓴이
/ 이지양
·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
논문: 「연암 박지원의 생활 특징과 문화예술사상」(『한국한문학연구』36집, 2005)외 다수
·
번역서(공역): 『역주 매천야록(상)(하)』,문학과지성사,2005
『역주
이옥전집』,소명출판,2001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2000
『조희룡전집』,한길아트,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