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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홍준의 국보순례] [52] 대영박물관 달항아리

문근영 2010. 7. 10. 12:14

[유홍준의 국보순례] [52] 대영박물관 달항아리

  • 유홍준 명지대교수·미술사

입력 : 2010.03.24 23:24 / 수정 : 2010.03.25 01:04

대영박물관 한국실에는 백자 달항아리<사진> 한 점이 진열되어 한국의 미를 대표하고 있다. 이 항아리를 보고 있자면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8세기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구워 낸 높이 45cm의 백자대호를 우리는 달항아리(full moon jar)라고 부르고 있다. 백자달항아리는 국내외에 20여 점 전해지고 있다. 그중 국보로 지정된 것이 2점, 보물로 지정된 것이 5점이다. 이렇게 귀한 달항아리가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유명한 현대도예가인 버나드 리치(1887~1979)가 서울에서 구입해 가면서부터였다. 그는 평소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도자가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할 만큼, 조선백자에 심취해 있었다.

그의 저서 '동과 서를 넘어서'를 보면 자신이 존경하는 백자의 나라에서 개인전을 갖고 싶어 1935년 덕수궁에서 전시회를 열고 강연회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귀국할 때 이 달항아리를 구입해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기뻐했다. 버나드 리치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평생 곁에 두고 보아온 이 달항아리를 애제자인 루시 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1995년 루시 리는 죽으면서 이를 다시 버나드의 부인인 재닛 리치에게 주었으며, 1998년 재닛이 죽자 그의 유품들과 함께 경매에 부치게 되었다.

당시 대영박물관에는 한빛문화재단의 한광호 회장이 기부한 한국유물 구입기금이 있었다. 박물관 유물구입위원회는 시세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약 1억2000만원을 적어내며 요행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 한국인이 약 5억원에 낙찰시켰다. 그러나 바로 이때 IMF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자 경락자가 포기하는 바람에 대영박물관으로 차례가 돌아와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연이 이렇고 보니 이 달항아리는 제 팔자 따라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후 백자달항아리가 세계 경매시장에 나온 것은 2007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 때였다. 이 달항아리는 서울 프리마호텔이 150만달러(약 17억원)에 낙찰시켜 국내로 들여와 상설 전시되고 있다.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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