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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통해 주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選擧)야말로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유지되는 기본이고 바탕입니다. 대표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기한(期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설혹 잘못된 인물이 뽑힌 경우라도
다음 선거에서 바꿔버린다면 선거의 본뜻은 살아나고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잘못된 선거 때문에 적격자가 아닌 인물이
당선되어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목민관이 제가 잘나서 백성의 위에 군림하는 지위라고 잘못 판단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요즘 국민소환제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임기 내에 있는 목민관이 백성의 뜻에 반하는 행정을 하거나 법에 위반되는 일을
하면 일정한 절차에 따라 목민관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하여 다산은 200년 전에 「탕론(湯論)」이라는 논문을 통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으며, 「원목(原牧)」이라는 글에서도 목민관의 존재 근거를 확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한다”(牧爲民有也)라고 천명하고 백성을 위해서 일해야지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의 배나 불리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을
위해서 일한다면 그런 사람은 목민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법제정부터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간다면서, 마을 이장이 백성들의 여망에 따라
법을 만들어 그 상위 단위의 장에게 올리고 최후의 황제에게도 그 아래 단위의 장이 올린 법으로 통치해야만 백성의 뜻에 따른 정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뒷날 황제가 자기에게만 편한 법을 제정하여 아래로 내려서 통치하였기에 애초의 주인이던 백성은 자리를 잃고 황제가 주인이 되어
백성을 억압하고 압제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백성을 지배하는 고을의 주인이고 대장이라고
생각하는 목민관들은 이런 기회에 다시 한 번 「탕론」이나 「원목」을 읽어보면서 잘못하면 국민소환제법에 걸려 힘들게 얻은 목민관의 지위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목위민유(牧爲民有)’라는 다산의 외침을 벽에 걸어놓고 백성들의 종(공복)이 목민관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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