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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한산과의 만남을 계기로 인생 이전과 인생 이후로 나눈다. 내가 겪은 모든 굴욕은 내 스스로 사서 당한 굴욕이란 것을 알았다. 나의 좌절 나의 실패는 오로지 그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배신은 내가 먼저 배신했기 때문의 결과이고, 애인의 변심은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의 결과라는 것을 안 것도 북한산상에서이다.
이 시는 도봉산 유원지 이병주 추모비에 새겨져 있는 ‘산을 생각한다(북한산)’의 전문이다. 요즈음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이병주와 북한산이 이렇듯 깊은 인연이 있는 줄을 그의 생전엔 미처 몰랐다. 생애에 굴곡이 심했던 이병주에게는 이처럼 북한산과 곡절 많은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젊은 시절, 20년 넘게 북한산 자락(불광동)에 살았던 나는, 동네뒷산으로 해서 백운대까지도 다녀올 수 있었다. 새벽마다 비봉아래 포금정사의 샘물을 떠다가 넷이나 되는 아이들의 마실 물을 댔다. 향림담 계곡을 지나 황춘대 능선에 올라서면 저편 사자능선의 나무들 사이로 조용히 떠오르는 북한산 일출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일요일에는 친지들과 만나 북한산에 올랐으니 북한산과의 안면이 나만큼 깊고 오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북한산, 서울시민에게 고마운 산 그렇지만 북한산이 내게 이런 것이었노라고 딱히 말할 만한 것이 없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성숙해가는 것을 철이 든다고 말하거니, 사시사철 북한산에 오르면서 철이 바뀌는 것을 몸으로 느껴왔으니, 내 북한산으로 하여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일상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등산이라고 한다면 나는 등산보다는 일상 속에서 산행을 즐기는 유산(遊山)쪽을 택하고 싶다. 나는 북한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북한산은 서울시민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담보해 주는 고마운 산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산 자락을 떠나온 지 10여년이 넘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 북한산을 못 잊어 가끔은 혼자 북한산에를 간다. 지난주에도 다녀왔다. 금아(琴兒)선생은 “신록을 바라다보는 것만으로 사는 것이 즐겁다”고 했는데, 나는 바로 그 신록의 깊디 깊은 속에 있었다. 이즈음 나의 북한산행은 언제나 백운대로부터 시작된다. 이제는 그것이 하나의 의식이 되어버렸다. 가끔씩 찾아가는 산행이리만치 우선은 거기부터 들러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진산이 북한산이요, 북한산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백운대라는 것도 물론 작용했다. 그러길래 선인들은 백운대 정상에 3.1운동 암각문을 새겨놓았고, 언제부터인가는 정상에 태극기가 휘날리게 해 놓았던 것이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서 기원한다 이상하게도 백운대 정상에 오르면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는 성취감보다는 엄숙한 마음, 기원하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백운대 정상에 서면 우선은 나와 우리에게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들을 기원하는 습성이 생겼다. 기도문을 하나 작성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은 있지만, 아직은 만들지 못했다. 백운대 정상에서 두 손을 모으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또 정상에 올라앉은 작은 바위를 돌면서, 지난주에는 이렇게 빌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겨레와 한반도에 진정한 안녕과 평화를 주소서. 우리 겨레로 하여금 두루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문명을 크게 일으켜 세계와 인류를 구원해 낼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소서. 북한주민들에게도 그 모두가 고깃국에 이밥을 먹고 잘살 수 있게 하소서. 오늘,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안보와 4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7천만 겨레의 올바른 행로를 위하여, 밝은 이성, 경건한 책임감과 진정성으로 깨어있게 하소서. 더 이상 이 나라가 혼란과 분열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이 떠난 뒤끝이 평화롭고, 그 자리가 또한 아름답게 해주소서. 그리고 이 다음 지도자로는 시대정신에 맞되, 거짓과 위선이 없는 수신(修身)의 사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은 가릴 줄 아는 분별 있고 품격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이 나라 이 공동체가 인류문명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한민족시대를 열게 해 주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보다 선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크게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시련을 주신다고 믿습니다만, 그러나 하루속히 미리내로 하여금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어느날 흔연히 쾌유하게 하소서. 빌고 또 빌고 간절히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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