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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신하, 지금으로서야 해당시킬 수 없는 단어입니다.
임금인 군주(君主)가 나라의 주인이고 나머지야 객(客)이던 시대에야 임금 아니고는 모든 국민은 신하였습니다. 높은 수준의 인격과 학식을 갖춘
임금과 신하 중의 뛰어난 인재가 임금의 높은 관료가 되어 손발이 맞게 나라를 통치하는 일처럼 보람되고 값진 일이 없었던 것이 옛날
군주시대였습니다.
경우도 다르고 입장도 크게 다르지만 억지로 빗대본다면, 훌륭한 대통령이 참으로 유능하고 인격 높은 고위관료를
발탁하여 나라의 품격도 높이고 국리민복도 넉넉하게 성취하는 것과 비교하겠지만, 그런 대통령이 언제 있었으며, 그런 멋진 고위관료가 언제
있었습니까. 가까운 조선시대만 해도 그런 경우는 더러 있었습니다. 선조대왕이 율곡 이이나 서애 유성룡을 발탁하였던 경우도 있고, 임진왜란의 전쟁
중에 뛰어난 백사 이항복이나 한음 이덕형이 혼신의 노력으로 선조를 도와 중흥의 길을 열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조 시대에는 번암
채제공이라는 정승이 발탁되어 ‘풍운지회’라는 만남이 충족되기도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22세에 진사과에 합격하여 사은의 자리에서 최초로
정조대왕과의 대면이 이루어지는데, 다산연보에는 바로 그 만남을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의 만남이라는 ‘풍운지회’가 이루어졌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18년, 정조가 49세로 세상을 떠나고 다산은 39세인 그때까지 성인 임금과 어진 신하는 조선왕조 후기 문예부흥기라는 높은
수준의 치세(治世)를 이룩해냈습니다.
22세의 다산에게 32세의 임금 정조가 진사급제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눈을 마주하자, 정조는
이름과 나이를 물었고, 28세에 문과에 급제한 다산을 초계문신으로 발탁하여 배다리를 놓고 수원의 화성을 쌓고 암행어사로 민정을 살피는 일을
맡겼습니다. 대단한 임금과 신하의 만남이었습니다.
발탁되었다가 자리만 바뀌면 임명권자와 등 돌리면서 서로를 헐뜯는 요즘의 세상과
그때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런 임금에 그런 신하가 없는 요즘은 그래서 세상이 시끄럽기만 한가 봅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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