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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당 정인보선생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다산학’을 가장 깊이 천착하여 가장 명쾌한 설명을 가하여 후학들에게 다산 연구의 길을 열어준 대표적인 학자였습니다. “선생의 학문 종지(宗旨)는 ‘신아구방(新我舊邦)’의 네 글자에 있다”라고 위당은 설명했는데, ‘신아구방’은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경세유표』의 저작목표로 여겼다는 다산 자신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한 내용이었습니다.
다산은 자신의 일대기인 「자찬묘지명」집중본(集中本)에서 “우리의 낡은 나라를 혁신시키려”는 뜻에서 『경세유표』라는 책을 저작했노라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위당은 500권이 훨씬 넘는 다산 저술은 내용이 어떻고, 저작목적이 어떠하던 그 근본 취지는 나라를 혁신시키려는 뜻에서 저작했노라고 단언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나라를 혁신하기 위해 다산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당시의 교과서는 4서5경이었기 때문에, 관념적이고 성리학적으로 해석된 당시의 교과서인 4서집주(四書集註 : 주자의 경학)를 다시 해석하여 봉건적 결정론으로 윤색된 모든 해석을 뒤엎고 다산 자신의 실학적이고 실천가능의 논리로 재해석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학술사상 대업(大業)이 이룩된 셈입니다.
당나라의 한유(韓愈)나 송나라의 주자가 『논어』의 ‘유상지여하우불이(唯上智與下愚不移)’라는 경문(經文)을 잘못 읽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상지(천재)로 아니면 하우(바보)로 태어나 발전과 진보의 가능성이 막혔다는 성3품설(性三品說)을 주장했습니다. 상등 인간, 중등 인간, 하등 인간의 세 종류의 인간이 있어 상품의 상등 인간만이 귀족이나 고관대작, 대학자가 되고 하품의 인간은 지배만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경의 해석에 대노한 다산은, “이러한 성3품설은 천하에 해독을 끼치고 만세에 화란을 끼치기에 충분하니 홍수(洪水)나 맹수(猛獸)의 피해보다 무섭다”라고 논박하여 봉건적 결정론에서 발전 가능의 근대적 가변성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렇게 교과서의 개혁을 통해서 나라를 새롭게 혁신하자는 다산의 논리는 지금은 의미가 없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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