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추모미사는 안중근 의사의 가톨릭 신자 신분 공식 확인하는 자리" | ||||||
-정진석 추기경,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미사 봉헌해 -뮈텔 주교 입장, "교회와 사제, 안중근 모두를 돌보는 방법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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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안중근 의사의 삶이 숭고하고 신앙과 민족 운동이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기 때문에 추모미사를 봉헌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안중근 의사를 민족자존과 국권 수호, 정의 실현을 위해 생명까지 아낌없이 바친 애국자이며, 평화주의자, 인권운동가, 고매한 인격자, 교육가로 소개하면서 "무엇보다도 가톨릭 세례명이 토마스인 철저한 신앙인"이었음을 강조했다. 한편 정진석 추기경은 "안타깝게도 우리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안중근 의사를 신앙인으로 올바르게 평가하는데 소극적"이었고, "당시 교구장인 뮈텔 대주교님의 소극적인 처신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해명에 나섰다. 당시 뮈텔 주교가 금지했음에도 뤼순감옥까지 안중근을 찾아가 종부성사를 준 빌렘신부에 대해서, 정 추기경은 "교회 책임자의 묵인내지 내적 협조 없이 주임사제가 사목지를 이탈해 성사를 집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뮈텔 주교의 묵인 또는 내적 협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면서, "나중에 비교적 가벼운, 몇 개월간의 직무정지를 명하고 빌렘 신부를 외국으로 출국시킨 것도 오히려 교구장이 사제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고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이어 당시 "뮈텔 대주교님의 입장에서는 교회와 사제, 그리고 신자인 안중근 토마스 모두를 돌보는 방법을 고심하며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밝혀진 학계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어서 그 반응이 기대된다. 독립기념과장을 지낸 김삼웅 씨등 학계의 견해에 따르면, 뮈텔주교가 안의사를 거사 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안중근을 알지 못한다 말하고 심지어 신도가 아니라고 공언했다. 이어 뮈텔주교는 1909년 11월 4일 서울 헌병본부에서 거행된 이토의 장례식에 선교사 3명과 함께 참여했다. 장례행사가 일본의 신도(神道)의 예식이라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조선천주교회'라고 쓴 화환을 식장에 진열케 했다. 결국 빌렘 신부는 3월 2일 자신이 여순으로 출발한다는 서한을 뮈텔에게 보내고, 3월 9일 안중근을 만나 종부성사를 주었다. 3월 10일 빌렘 신부가 감옥에서 집전한 미사성제에서는 안중근이 직접 복사(服事)하고 성체를 받아 모셨다. 이처럼 그동안 밝혀진 바에 따르면, 뮈텔 주교가 교회와 사제, 안중근 모두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정 추기경의 발언이 입증되려면 많은 중간 자료가 필요할성 싶다. 이날 정진석 추기경의 강론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인으로 다시 조명된 것이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서였다"면서, 자신 역시 "전임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오늘 이 추모미사는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가톨릭 신자 신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결국 정진석 추기경은 이번 미사를 통해 뮈텔 주교가 부인했던 것을 철회하고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신자였다"는 사실만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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