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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학의 요체는 성리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독창적인 새로운 학설을 세운 점에 있습니다. 공자나 맹자는 물론, 노자나 장자에도 나오지 않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끌어다가 순수하게 선하기만 하고 일체의 악(惡)이 없는 성품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대칭으로 기질지성(氣質之性)을 연결시켜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성품으로 구별하여 성리학의 체계가 세워졌습니다.
다산은 바로 여기에서 본연(本然)이라는 두 글자의 출처를 밝히면서 우리 유학(儒學)에는 어디에도 없는 말임을 증명해냅니다. 『능엄경』(楞嚴經)이라는 불경에, “여래장성 청정본연”(如來藏性 淸淨本然)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나오는 ‘본연’이라는 두 글자를 송나라의 학자들이 우연하게 빌려 사용했는데, 그것이 결국 ‘성리학’이라는 송학(宋學)으로 발전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불경에 의거하여 본연이란 ‘무시자재’(無始自在)의 뜻으로 풀이된다고 하면서, 우리 유가(儒家)에서는 성품이란 하늘에서 받은 것이나 불교에서는 본연의 성품이란 어디서 받은 곳도 없이 태어나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저절로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서, 이것이야말로 하늘을 거역하며 천명을 무시하고 이치에 어긋나 착함을 해치는 것으로 본연의 학설이야말로 그보다 더 나쁜 학설은 없다고 통박하였습니다.
이런 논리에서 다산은 성리학에는 ‘본연지성’이라는 불교의 논리가 삽입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성리학의 선병(禪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선(禪)이라는 불교적 논리가 성리학에 끼여 있으니, 그런 병통을 제거할 때에만 본질적인 유교가 된다면서, 경전의 모든 논리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양분하여 성리학적으로 해석한 송나라 유학자들의 잘못을 파헤쳐, 새로운 경학의 세계를 수립하였으니, 그게 바로 경을 실용적이고 실사구시적으로 해석한 ‘다산학’이라는 학문세계였습니다.
고려 말에서 자신이 살던 19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성리학에 열중하던 때에, 그 학문의 문제점을 파헤쳐 새로운 학문을 열어젖힌 다산학이 실천가능한 실학논리에 가장 접근하는 경험론적 학문임을 그런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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