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신서 서(欽欽新書序)
정약용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니 인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관이 또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히 살게 해 주고, 죄 있는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히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여긴다.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부인(婦人)들을 호리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하게 절규하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휼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 된다.
인명(人命)에 관한 옥사(獄事)는 군현(郡縣)에서 항상 일어나는 것이고 지방관이 항상 만나는 일인데도, 실상을 조사하는 것이 항상 엉성하고 죄를 결정하는 것이 항상 잘못된다. 옛날 우리 건릉(健陵 정조의 능호인데 정조를 가리킴) 시대에 감사(監司)와 수령 등이 항상 이것 때문에 폄출(貶黜)을 당했으므로, 차츰 경계하여 근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다시 제대로 다스리지 않아서 억울한 옥사가 많아졌다.
내가 목민에 관한 말을 수집하고 나서, 인명에 대해서는 ‘이는 마땅히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있어야겠다.’ 하고, 드디어 이 책을 별도로 편찬하였다. 경서(經書)의 훈설(訓說)을 머리에 실어서 정밀한 뜻을 밝히고, 다음에 사적(史跡)을 실어서 옛날의 관례를 나타내었으니, 이른바 경사지요(經史之要)로서 3권이다. 다음에는 비판하고 자세히 논박한 말을 실어서 당시의 법식을 살폈으니, 이른바 비상지준(批詳之雋)으로 5권이다. 다음에는 청(淸) 나라 사람이 의단(擬斷 죄를 헤아려 형벌을 정함)한 사례를 실어서 차등을 분별하였으니, 이른바 의율지차(擬律之差)로 4권이다. 다음에는 선조(先朝) 때 군현의 공안(公案) 중에서 문사(文詞)와 논리가 비루하고 속된 것은 그 뜻에 따라 윤색하고, 해조(該曹)의 의논과 왕의 판결은 삼가 그대로 기록하되 간간이 내 의견을 덧붙여서 천명하였으니, 이른바 상형지의(祥刑之議)로 15권이다. 전에 황해도 지방의 군읍에 있을 적에 왕명을 받들어 옥사를 다스렸고, 들어와서 형조 참의(刑曹參議)가 되어 또 이 일을 맡았었다. 그리고 죄를 받아 귀양살이하며 떠돌아다닌 이후로도 때때로 옥사의 정상을 들으면 또한 장난삼아 의의(擬議 가상적으로 옥사를 논하고 죄를 정함)해 보았는데, 변변치 못한 나의 이 글을 끝에 붙였으니, 이른바 전발지사(剪跋之詞)로 3권이다. 이들이 모두 30권인데, 《흠흠신서(欽欽新書)》라 이름하였다. 내용이 자잘하고 잡스러워서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일을 당한 이는 그래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자산(子産)이 형전(刑典)을 새기자[鑄] 군자가 그것을 나무랐고,이회(李悝)가 《법경(法經)》을 만들자 뒷사람이 그를 가벼이 보았다. 그러나 인명에 관한 조목은 그 중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 수당(隋唐) 때에 와서는 이를 절도(竊盜)ㆍ투송(鬪訟)과 혼합하고 나누지 않아서, 세상에서 아는 것은 오직 한 패공(漢沛公 한 고조(漢高祖))이 약속한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는 그것뿐이었다. 명(明) 나라가 천하를 통치함에 이르러 율례(律例)가 크게 밝혀져서 인명에 관한 모든 조목이 환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모(謀)ㆍ고(故)ㆍ투(鬪)ㆍ희(戲)ㆍ과(過)ㆍ오(誤)의 분별이 세밀하게 나열되고 분명하게 제시되어 어둡거나 의혹스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다만 사대부(士大夫)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오직 시부(詩賦)나 잡예(雜藝)만 익혔을 뿐이므로 갑자기 목민관이 되면 어리둥절하여 손쓸 바를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간사한 아전에게 맡겨 버리고는 감히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니, 저 재화(財貨)를 숭상하고 의리를 천히 여기는 간사한 아전이 어찌 중도에 맞게 형벌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일을 다스리는 여가에 이 책을 펼쳐놓고서 인증(引證)하고 우익(羽翼)으로 하여 《세원록(洗冤錄)》ㆍ《대명률(大明律)》의 보좌로 삼으면, 그 유(類)를 미루어서 아주 정밀한 데에 이르러 또한 심의(審議)하는 데 도움이 있을 것이요, 하늘의 권한도 잘못 집행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옛날 구양 문충(歐陽文忠)은 이릉(夷陵)에 있을 적에 관아(官衙)에 일이 없자 해묵은 공안(公案)을 가져다가 이리저리 사례를 끌어내어, 이를 일생 동안 옥사를 다스리는 데 경계의 자료로 삼았는데, 하물며 자신이 그 지위에 있으면서 그 직무를 걱정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흠흠(欽欽)’이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삼가고 삼가는[欽欽] 것은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다.
도광(道光 청 선종(淸宣宗)의 연호) 2년인 임오년(1822, 순조 22) 봄에 열수 정용은 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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