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중반의 다산은 황해도 곡산부의 부사를 역임합니다. 모처럼의 목민관으로 그동안 갈고 닦은 학문적 역량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참으로 훌륭한 수령(守令)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조그마한 고을의 통치자로서 전권을 행사하면서 유토피아를 이룩했다고나 할까요. 자신의 일대기인 「자찬묘지명」이라는 글에는 그때의 치적(治積)을 낱낱이 기록하여 누구에게 자랑해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정말로 큰 역량을 지닌 벼슬아치로 여유만만하게 온갖 혜택을 고을 백성들에게 베풀어준 원님이었습니다.
당파싸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멀고 먼 시골의 원님은 너무나 적합한 직책이었기에, 그 시절에 읊었던 다산의 시는 매우 여유롭고 넉넉하며, 구김살 없이 맑고 밝은 시가 많았습니다. 관청의 뜨락 건너편에 자리한 연못을 구경하면서 읊었던 「지각절구」라는 다섯 수의 시는 얼마나 한가롭고 여유로우며 싱싱한 시인가요.
꽃 심은 사람들 꽃구경할 줄만 알지 種花人只解看花 다시 화사한 잎펴짐은 모른다네 不解花衰葉更奢 한차례 장마비 그친 뒤에 頗愛一番霖雨後 가느다란 가지마다에 연노랑 새싹 돋움은 정말로 예쁘다네 弱枝齊吐嫩黃芽 (池閣絶句)
꽃구경만 즐기지, 꽃이 지고나면 가느다란 가지마다에 연노랑 새싹이 돋아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세속의 인간들에게 일침을 놓는 내용입니다. 말할 것 없이 꽃이 우선 아름답지요. 그러나 꽃이 지고 끝나는 것이 세상일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꽃에 못지않게, 연노랑 새움의 아름다움은 꽃에 못지않다는 이야기에는, 겉만의 흥취에서 끝나는 옅은 사람들의 행태를 은근히 꼬집고 있습니다. 꽃이 지고 우거지는 신록의 멋은 오히려 꽃을 능가할 수 있다는 데서 오묘한 세상의 이치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요즘의 산야에 우거진 신록을 보면 다산의 시 솜씨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록 속에는 아직도 지지 않은 꽃도 있고, 막 피어나는 아카시아의 짙은 향내는 더욱 신록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우선의 화려함에만 정신을 팔면서 뒤이어지는 천지의 조화에는 눈감는 속된 인간을 비웃는 다산의 깊은 뜻이 은근하게 보여집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