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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촛불집회에 나타난 ‘그들의 깃발’ / 남 영 신

문근영 2010. 4. 20. 07:38

 

촛불집회에 나타난 ‘그들의 깃발’


                                                  남 영 신(국어단체연합 국어상담소장)

작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던 미국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이라는 작품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태평양 전쟁 때 미군과 일본군이 유황도(이오지마)에서 벌인 전투를 소재로 하여 전개되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의 포스터 한가운데에 실린 사진 한 장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 사진은 이오지마(태평양의 섬 이름)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미군 병사 6명이 섬 중앙에 있는 동산에 성조기 깃발을 세우는 장면을 당시 종군 기자였던 조 로젠탈이 찍은 것인데, 당시 이 사진 한 장이 미국인을 단결시켜 태평양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게 해 주었다고 한다. 미국인에게 성조기는 영광과 자부심의 상징이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인은 정치 집회나 시위에서 흔히 성조기를 들고 흔든다.

그러나 우리에겐 깃발이 영광과 자부심을 심어주기보다는 불만을 표출하는 상징, 곧 ‘아우성’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 고단하고 굴곡 많은 삶을 지탱해 온 민족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환이 ‘깃발’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읊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다행히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하여 우리도 태극기를 자부와 긍지의 상징으로 여기는 세대가 등장한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후 태극기를 휘날리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계기가 그리 많이 생기지 않은 탓인지 태극기가 한국인을 통합시키는 강한 마력을 내뿜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일반적인 정치적 요구를 아우를 수 없는 깃발

벌써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에서, 나는 점점 늘고 있는 ‘그들의 깃발’을 보면서 조금씩 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시위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떤 깃발을 들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시위의 성격이 규정되고, 시위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념과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시위에 사용하는 깃발은 그 시위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그 시위를 잠재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시위의 명분이 뚜렷해지고 그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의 주장이 일관성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현재의 촛불 시위에 나타나고 있는 깃발은 △△당, △△노조, △△대학 총학생회 등과 같은 폐쇄 집단의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촛불 시위에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내보이고 싶어서 자신들의 깃발을 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지극히 근시안적이다. 집회에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집회가 있고, 그러면 안 되는 집회가 있는 법이다. 국민의 일반적인 정치적 요구를 내거는 시위나 집회에서는 개별적인 깃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다. 자신들의 깃발 때문에 일반 시민의 요구나 투쟁 목표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깃발은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나 이상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상징물이다. 그렇다면 그 집회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고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합할 수 있는 넓고 높은 수준의 깃발이 필요하다. 10대에서 50대까지를 아우르고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시위에서는 태극기 이상으로 참가 시민과 잠재적 동조 시민을 아우를 수 있는 깃발이 없을 것이다. 촛불 집회에 나선 사람들이 촛불과 피켓 외에 깃발을 든다면 그 깃발은 태극기가 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깃발’을

2002년의 태극기 패션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문화제 성격을 가미한 촛불 시위에서는 태극기를 활용하여 국민의 결집된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으리라. 만일 거기에 태극기가 등장한다면 촛불 시위가 더욱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시위가 불필요하게 과격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경찰의 시위 견제도 지나치게 과격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극기 앞에서라면 우리 온 국민이 각자의 이념과 목표를 고집하지 않고 대동단결하는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리라고 본다. 과거 많은 이익집단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곧바로 분열했던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이익 앞에서 여지없이 분파주의로 핵분열을 하는 악습도 태극기를 매개로 하면 조금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촛불 시위 이후에도 국민을 하나의 이상으로 묶어 놓을 수 있는 계기를 태극기를 이용한 시위로 마련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요구한다. 굳이 깃발을 들고자 한다면 ‘당신들의 깃발’을 내리고 ‘우리 모두의 깃발’을 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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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남영신
· 서울대 법대 졸업
· 국어문화운동 회장
· 국어단체연합 국어상담소장
· 저서: <남영신의 한국어 용법 핸드북><4주간의 국어 여행>
          <국어 한무릎공부><문장 비평>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