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
심경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 다산이 춘천을 여행한 까닭은
벌써 20년 전 일이다. 강사 시절에 나는 다산 정약용이 춘천을 여행한 사실을 알고는 다산이 거쳤을 곳을 하나하나 지도에서 확인하고 찾아가보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뒤에는 아예 근무지를 춘천으로 옮기고 다산의 여행 경로를 여러 차례 따라 가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여행이 지닌 정신사적 의미에 대해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였다. 누가 말했던가, ‘떠나면서 묻는다’라고. 『다산과 춘천』(강원대 출판부, 1996)이란 나의 책은 지금의 곳으로 근무지를 옮긴 뒤에야 펴낼 수 있었다.
다산이 1820년과 1823년에 춘천을 여행한 것은 한번은 조카의 혼사에, 한번은 손자의 혼례에 동행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다산은 북한강 유역과 곡운 구곡을 돌아보면서 산수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소요할 수 있었다. 곡운 구곡의 중심이라고 할 곡운 영당과 화음정사, 사창 등은 지금은 화천에 속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춘천도호부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실은 다산은 그 여행을 통해서, 우리나라 상고사에서 춘천 지역이 차지하는 위치를 고증하고 그곳이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행도(行都)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였다. 다산의 춘천 여행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틈만 나면 이야기하였으므로 중복의 혐의가 없지 않다.
하지만 최근 고(故) 김찬삼 님의 추모 모임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문득 다산의 여행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 “젊은이여 왕복 기차표를 끊지 말라”
고모 댁에 기식하면서 중학교에 다닐 때 사촌 형의 서가에 꽂혀 보던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을 처음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서 세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에 대한 상식을 배웠다. 선생이 찍은 사진들은 과거의 세계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지금의 세계 지리와 정세를 이해하는 데에도 준거가 될 것이다. 그 전집이 여전히 발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을 보냈기에, 대학을 다닐 때 선생의 고독한 여행과 뜻밖의 만남을 동경하고는 하였다. 특히 선생의 몇 번째 여행 때인지, 오토바이를 배에 싣고 떠난 여행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생전에 “히말라야의 산길에서 홀로 여행을 하다가 그냥 길가에 쓰러져 죽고, 다음에 그 길을 지나는 다른 여행자에 의해 길가에 조용히 묻히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정말로 여행의 방법이 남달랐고 여행의 철학이 각별하였다.
“젊은이여 왕복 기차표를 끊지 말라.”시인이자 국어 교사이셨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실존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말이다. 사르트르의 말일까,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겠다. 젊은 시절에 나는 그 말을 되뇌면서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방랑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원문 자료를 해독하기 위해 고통을 겪고 시한을 정해 결과물을 내야 하는 일에 쫓기게 되고 말았다. 그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리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 유달리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다산이 마현의 소내 앞에서 배를 타고 북한강을 거슬러 춘천의 소양정 아래에 이르기까지 240리 36탄의 여울을 하나하나 헤아렸던 그 여행의 깊이를 도저히 추체험할 수가 없다. 설령 여행사에 부탁을 해서 『김찬삼의 세계여행』에 나온 지역을 돌아볼 비행기표와 기차표를 구한다고 해도, 김찬삼 선생이 맨발로 걷고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지났던 히말라야의 산길과 아프리카의 비포장도로를 결코 같은 방식으로 지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3. 여행과 삶의 일회성
여행의 족적은 삶의 일회성을 또렷이 각인한다. 일회성을 지니기에 그것은 비로소 보편적 의미를 지닐 수가 있다. 『다산과 춘천』에서 나는 다산의 춘천 여행과 관련하여 그 세 번째 의미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그 세 번째의 의미만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산은 누구보다도 삶의 일회성을 잘 알고 있었고, 여행을 상심낙사(賞心樂事)로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산은 큰 형과 같이 하는 유람을 즐거워하였고, 그렇기에 더욱 유배지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았던 작은 형 정약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1820년에 지은 칠언절구 25수 가운데 제2수는 이러하다.
예순 살 먹은 늙은이가 일흔 살 형을 따라 六十翁隨七十兄
과피선(조각배)으로 수월하게 강을 오른다. 瓜皮容易溯江行
해마다 이 즐거움 어찌 적으랴만 年年此樂寧云少
연못가에 봄 풀 돋자 그리움 더해라. 只是池塘草又生
마지막 구의 ‘연못가에 봄 풀 돋는다’는 표현은 남조 송나라의 시인 사령운(謝靈雲)이 지은 「연못가 누각에 올라서」(登池上樓)라는 에서 따온 것이다. 사령운은 조카 사혜련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좋은 시구가 떠오른다고 하였다. 어느 날 시를 짓다가 완성하지 못하고는 얼핏 잠이 들었는데, 그 꿈에 사혜련을 만나보고 ‘연못가에 봄풀 돋는다(池塘生春草)’라는 구절을 얻었다고 한다. 다산은 평소 자신을 계발해 주던 둘째 형과 자신과의 관계를 그 두 사람처럼 정신으로 교감하는 관계라고 본 것이다.
강진에서 다산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형님을 그리워하면서 자주 편지를 내었다. 그러나 정약전은 1816년 6월에 흑산도에서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춘천 여행길에 다산은 그토록 신교(神交)하였던 정약전의 묘지명을 구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묘지명을 완성한 것은 첫 번째 춘천 여행을 하고 난 이듬해의 일이다.
첫 번째 춘천 여행의 시집은 『천우기행권』이라고 하였다. 그 마지막 시 「협곡을 나오며」(出峽)는 상심낙사의 여행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의지를 담고 있다.
협곡을 나오자 하늘 땅 웅대하고 出峽乾坤大
배를 매는 곳에 초목이 정지해 있다. 維舟草木停
먼 봉우리에는 솔방울이 검고 遠峯松點黑
맑은 물가에는 인동초 잎 푸르구나. 晴渚鷺絲靑
물 위로 왔다가 다시 돌아가나니 水上來還去
인간세상에 취해 깨지를 못하다니. 人間醉不醒
시절을 슬퍼한다고 무슨 보탬 되랴 傷時竟何補
머리 희도록 경전이나 파련다. 頭白且窮經
머리 희도록 경전을 파겠다는 말은 ‘나른함’이나 ‘어정거림’의 뜻이 아니다. 나의 연구가 세상 구원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나의 연구를 통해 경세의 뜻을 더욱 가다듬겠다는 결심을 내비친 것이다.
4. 다산의 북한강 여행길 따라
나의 의식은 오늘 소양정 아래를 떠나, 다산이 일러준 이름들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강물을 내려가고 있다. 병벽탄노고탄(고로탄) ·곡장탄·번대탄·휴류탄·아올탄(병탄)·신연도·아자탄·우수탄·교탄·호로탄(쇠오항)·학암탄·현등협·차석탄·정족탄·마당포·작탄·곡갈탄·안반탄·염창탄·술원탄·금허촌(강촌)·율현탄·광탄·호로탄·정족탄·배류탄(두두래)·송의항·흑영탄(엽피탄)·병벽탄(빨래탄)·고제탄·황공탄·장탄·곡갈탄·마석뢰·공곡천·어시탄·괘탄·유정탄·십개탄·목탄·대천탄.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
'다산함께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茶山이야기] 공정한 비판의 겸허한 수용 / 박석무 (0) | 2010.04.17 |
|---|---|
| [실학산책] 정약전이 찾아갔던 우이도 옛집 / 허시명 (0) | 2010.04.17 |
| [다산포럼] 40년 동안의 불온함 / 염무웅 (0) | 2010.04.16 |
| [茶山이야기]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 박석무 (0) | 2010.04.16 |
| [茶山이야기] 손암(巽菴)형의 편지 한 통 / 박석무 (0) | 2010.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