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大)한민국’인가 ‘소(小)한민국’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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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풍습이 다른 민족을 포용하던 로마와 몽골이 세계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이민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미국이 세계 제국을 이룩한 것은 다른 요인과 함께 이 관용 정책 또는 이질적인 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정책을 유지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질적인 것을 통합하고 아우를 수 있는 사회는 분명히 큰 사회일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생겼다. 우리는 얼마나 관대한 나라, 얼마나 관대한 사회를 만들었으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관대한 사람들인가?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영향력이 있는 나라로 발전하려면 아무래도 우리가 관대함을 갖추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서구인이나 심지어 일본인에게서까지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도 우리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동남아인들을 그대로 멸시하고 차별한 것이 사실이다. 돈으로 신부를 사오면서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던 사람들이 우리였고,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백안시하고 그들의 능력을 높이 사려는 적극적인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 우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구인이나 일본인보다 더 관대한 민족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별 희망이 없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런데 더 한심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정작 우리 가운데에서 ‘나의 반대편’을 향해 내뱉는 불관용이 극한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며칠 전 군사 전문가라고 하는 지 아무개가 나서서 한 젊은 연예인의 선행을 극우적 상상력으로 비꼬는 것을 보았다. 지 아무개와 같은 방식으로 이 연예인을 비난한 누리꾼들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행위라면 선행마저도 악의적으로 손가락질할 정도로 옹졸한 사람들이 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얼마나 옹졸한 사람들인지 증명해 주는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인터넷에서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이 비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려 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있는 ‘보수 우익’ 인사들까지 나서서 그를 협박한 모양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는 위대한 사람도 없고 훌륭한 사람도 없었다. 한 사람을 위대하게 자랄 수 없도록 끊임없이 견제하고 딴죽을 거는 옹졸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같은 편이면 다 좋고 다른 편이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옹졸한 사람들의 판단력이다. 이런 우리가 북한 동포를 포용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고, 동남아인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소인배들의 사회에서 소인배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소한민국’ 사람들이 아닌가? 한때 욱일승천하던 대영제국, 대일본제국을 본떠 우리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써 본 일이 있었다. 불과 13년이란 짧은 기간 존재하다가 망해 버렸지만, 그 국호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대영제국이 미국이나 인도 같은 식민지를 품지 못해서 몰락했고, 대일본제국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로 몰락해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대한민국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을까? 말만 대(大)자를 붙였을 뿐 실제로는 나만 잘 살 수 있다면 소인배의 ‘소한민국’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건 아닐까? 만일 우리가 정말로 ‘대한민국’을 건설하려 한다면 먼저 우리 안의 적대 세력에게 관대함을 보일 수 있는 대인의 풍모를 갖추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삶을 유지하고자 우리 땅에 들어온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관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선행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미네르바’라는 특정인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을 잠재우려는 수작을 하는 등의 속 좁은 짓으로는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없다. 북한을 향해 고무풍선을 날리는 사람도 한국인이고,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돌리는 사람도 한국인이다. 이처럼 이익의 양극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하면 우리는 ‘대(大)한민국’을 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된다. 경제난으로 더욱 살기 어려워진 요즘 우리 안에 새삼스럽게 반공주의나 애국주의 광풍이 일어나 우리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차별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시작해서 머지않아 다가올 좋은 시절에 명실상부한 ‘대(大)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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