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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으로 추앙받고 있는 공자(孔子), 젊은 시절에는 참으로 많은 꿈과 희망을 지니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요순시대를 복원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주공(周公) 같은 경륜 높은 통치자를 본받아 이상세계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꿈을 실현하고파서 밤잠을 설치면서 전전반측했다는 기록들이 보입니다. 노경에 이르러서야 기운도 쇠해지고 욕구도 시들면서 꿈에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 주공 때문에 한탄을 금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도 전해집니다.
그렇게도 사모하고 숭앙했던 주공, 공자에게는 참으로 따르고 싶던 롤모델이었습니다. 『논어』의 태백편을 보면 그렇게 훌륭한 주공의 지능이나 기예의 극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驕且吝)’하다면 그 나머지야 볼 것이 없다면서 교만하고 인색한 인간의 잘못됨을 질타하였습니다. 평범한 일반 인간들이야 교만하면 어떻고 인색하면 어떻겠습니까마는, 사회의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인색해서야 세상에 해악만 끼칠 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했던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교만이야 특별히 해석할 필요도 없이 겸손하지 못하고 긍지만 높아 자기 잘남에 도취된 상태이지만, ‘인색’은 어떤 뜻인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논어고금주』에서 다산은 독특한 해석을 내렸습니다. 우선 두 가지의 뜻을 제시합니다. ‘인색’이란 색시(嗇施)라고 풀이하여 베풀기에 인색함을 뜻한다 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할 때의 인색의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베풀기를 꺼려하는 인색과, 잘못을 고치는 일에 인색한 경우를 설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바라던 인간상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떤 지능과 기예의 탁월함을 지녔다 해도, 베풀기에 인색하고 잘못을 고치는 일에 인색하고는 인격자가 될 수 없노라고 확언을 했던 것입니다.
가지지도 못했고 지위도 없는 사람들이야 인색할 것도 없고 교만을 떨 건더기도 없지만, 문제는 가진 사람들과 지위 높은 사람들입니다. 사회적 갈등이 가시고 분열의 골이 메워지려면 가진 자와 지위 높은 사람들이 교만과 인색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때문에 공자와 다산의 말씀을 되새겨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여겨집니다. 잘못을 고치기에 인색한 사람이 많고서야 어떻게 좋은 세상이 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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