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아랍식 이름을 가진 미국 대통령』 / 김종철

문근영 2010. 3. 21. 02:00

오바마시대와 한국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못지않게 오바마에게 짐이 되는 것이 이스라엘이다. 오바마는 당선자 시절 이스라엘이 가자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자 ‘대통령은 부시 한 사람’이라는 말만 하고 침묵을 지키다가 취임하자마자 신속하게 견해를 밝히기 시작한다. 그는 임기 이틀째인 1월 21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등 중동의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건다. ‘중동의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공고히 하겠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미국과 가까운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무드 압바스에게 맨 먼저 전화를 한다. 이것을 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크게 흥분했다고 한다.

아랍식 이름을 가진 미국 대통령

그러나 오바마가 미국정부의 전통적 이스라엘 정책을 크게 바꾸리라고 기대하면 너무 성급한 일이 될 것이다. 그 자신이 아랍식 이름을 지니고 있고, 어머니가 재혼한 남성이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인으로 어린 오바마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더라도 현재의 그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대통령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제33대 트루먼부터 제43대 조지 W. 부시까지 11명의 대통령들보다 오바마가 이스라엘과 중동 아랍국들 간의 문제에 관해 가장 진보적인 견해를 가졌음은 분명하다.(지미 카터가 대통령 재임 때보다는 퇴임 뒤에 국제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스라엘의 비인도적인 행태와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비판한 것이 예외일 뿐이다) 그러나 전임자들보다 이 문제에서 훨씬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그가 앞으로 중동 평화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미국의 대다수 국민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보수적 기독교인들 다수는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양자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스라엘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태교를 섬기는 나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곳이고 <구약성서> 의 본고장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지닌 미국인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자라나는 세대가 명백히 알아야 할 것은 성서의 유태민족과 현대 이스라엘인들은 역사적으로 일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중요한 주제이므로, 여기서 자세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해외기지’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건국되었다. 옛 유태 땅에 유태민족의 후예들이 나라를 세우기까지는 파란곡절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국제연맹은 ‘유태인들의 국가’를 세울 목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영국의 신탁통치령으로 승인했으나 그런 나라는 들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제2차 대전이 끝난 뒤 중동의 석유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들이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을 막고 이스라엘 ‘건국’에 힘을 모아준다. 그 ‘신생국’을 해외기지 겸 중동의 거점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 중동은 미국이 차지해야만 했다. 1945년 미국 국무부 관리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 자원이 “전략적 힘의 거대한 원천이며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물질적 노획물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걸프 지역은 일반적으로 “외교적 투자분야에서 가장 값비싼 경제적 노획물”로 간주되었다.

  아이젠하워는 훗날 걸프 지역이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영국도 동의했다. 영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1947년 중동의 자원이 “세계적 영향력 행사나 지배에 관심을 가진 모든 강대국에게 극히 중요한 노획물”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법적인 책략에 의해서 중동에서 축출되었고, 영국은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전락했다.(노엄 촘스키, <패권인가 생존인가>, 189쪽)


‘영국이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전락했다’는 표현을 보니 이라크전쟁에서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멸시를 당하면서도 끝내 미국의 ‘충실한 하부 동맹자’ 노릇을 하던 일이 떠오른다.


  핵보유국 이스라엘과 ‘악의 축’ 이란과 북한


건국 이래 지난 60여년 동안 이스라엘은 미국의 ‘피보호국’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중동의 군사 강국이었다. 그것은 미국과 온 세계에 퍼져 사는 유태인들이 이스라엘을 강력히 지원하고 미국이 뒷받침한 결과였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이 지역에서 대량살상무기 문제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위험’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은 소국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군의 군사 및 과학기술의 해외기지로 봉사하는 길을 택했으며, 그 결과 최첨단 군사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은 군사 관련 첨단산업인데, 이것은 미국경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 )

  이스라엘은 후원국인 미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다른 분야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비대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군의 연구개발 책임자는 자국의 공군 및 기갑 군사력이 미국을 제외한 어떤 나토 회원국보다 규모가 더 크고 기술적으로 선진화되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 이들의 행동방식은 이 지역은 물론 인권문제를 우려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쉽게 용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명이 높다. (위의 책, 199~200쪽)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스라엘은 핵보유국이다. 그것은 물론 미국의 적극적 협조와 묵인 아래 이루어진 일이다. 그런데 레이건부터 아들 부시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이란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한사코 반대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막으려고 했다. 특히 아들 부시는 이란과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였다. 이것을 보고 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이런 비판을 했다. “미국은 수천 개가 넘는 핵탄두를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도 다수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데, 두 나라의 핵은 전적으로 방어용이고 이란과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무조건 공격에 쓸 것이란 말인가?” 거기에는 이런 논리가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경찰이고,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중동국가들, 특히 이란이 자국을 향해 핵무기를 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대응수단을 가져야 한다.’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끝내 멸망한 유태나라의 백성들 중에는 세계 각지로 이주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의 이산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한다. 현재 이스라엘 밖에서 가장 큰 유태인공동체는 미국에 있는데, 인구는 530만여 명이다. 이들은 3억이 넘는 미국 전체 인구의 2%도 되지 않지만 그 세력은 어느 소수민족에 뒤지지 않는다. 2008년 현재 이스라엘에 사는 유태인은 전체 인구 728만여 명의 76%인 550만여 명으로, 미국의 유태인 수보다 조금 많다.


550만 유태인이 주류를 이루는 이스라엘이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수억 아랍인들을 상대로 학살을 서슴지 않는 전쟁을 일삼는 것, 특히 2008년 말에 가자지구의 하늘과 땅에서 1천명이 넘는 인명, 그것도 주로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을 어떤 논리로 합리화할 수 있을까?


  과거 학살 당한 유대인, 지금 학살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여러 나라의 일부 언론인이나 정치인, 학자들은 유태민족이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에게 6백만여 명이나 대학살(holocaust)을 당한 데 비하면 아랍인들과의 전쟁에서 빚어진 인명 살상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대상을 완전히 잘못 짚고 있다.


이 문제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막심 로댕송(Maxime Rodinson, 1915~2004, 프랑스의 사회학자, 역사학자, 동양학자로 유명한 <마호멧 전기>를 썼음)이었다. 그 자신이 유태계인 로댕송은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강대국들의 논리를 이렇게 비판한다.


  이스라엘이란, 아랍인들에게 (···) 서방세계가 동양에다 무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만든 그들의 후손이었고 그러므로 당연히 이스라엘은 불의와 압제의 응축된 상징, 바로 그것이었다. 아랍어에 있어서의 ‘시온주의’란 어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자본주의’라는 어휘처럼 ‘제국주의’, ‘식민주의’ 따위의 사악함을 연상시키는 음산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침략적인 압제자들이 살고 있는 일종의 무장병영에 지나지 않는다. (···) (서방세계가) 이스라엘 내부구조의 미덕을 인정하고 때로는 격찬하기도 했던 것은, 그들이 유럽의 유태인들에게 저질렀던 모든 죄악을 기억 속에서 지우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서양사람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증오와 경멸, 자신들 중 일부가 수수방관하는 틈을 타 일부가 저질렀던 대학살, 이방인들에게 가졌던 반감 따위를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잊게 해주었던 것이다.(막심 로댕송 지음, <아랍의 거부>(원래 제목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거부), 임재경 옮김, 1979년 10월, 두레, 56~7쪽)


로댕송은 “유태민족은 ‘로마인들의’ 무력에 의해 그들의 국가가 파괴당함을 목격하였지만 팔레스타인 땅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은 이 민족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 뒤로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떠나면, 그들을 더 이상 한 민족으로 규정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어느 날 ‘시온주의’를 앞세우고 팔레스타인에 나타나서 ‘아브라함, 모세 할아버지의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고 주장하니 아랍 세계가 얼마나 분노하고 흥분했겠는가? 그것은 마치 삼국시대 초기에 조선 땅에서 특정 종교를 섬기다가 외세의 침략을 받아 한반도를 떠난 민족의, 뿌리가 약한 후예들이 2,000년 뒤에 찾아와서 “이 땅은 원래 우리 것이었으니 너희는 나가라”고 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물거품이 된 팔레스타인 독립의 꿈


기원전 4세기 이래 그리스, 로마, 동로마, 십자군, 오토만 터키, 이집트 등의 지배를 받다가 1920년에 가까스로 영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어 28년을 기다린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런데 1948년에 유태민족을 자칭하는 무리가 총칼을 들고  나타나서 ‘2,400년 독립의 꿈’을 무산시켜버린 것이다.


버락 오바마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극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고, 마틴 루터 킹 2세의 부도덕을 비판할 수 없듯이, 이스라엘의 건국 역사와 그 이후 60여년의 팔레스타인 압박, 그리고 그 나라가 일으킨 여러 차례의 무자비한 전쟁은 오바마 대통령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나 다름없다. 그가 이 금지된 영역을 조심스럽게 파고들어 중동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글쓴이 / 김종철
· 전 동아일보사 기자
·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 전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 현 재능대학교 초빙교수
· 평론으로 <상업주의소설론> 등, 저서로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1922)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1995), 역서로 <말콤 엑스>(공역,1978) <산업혁명사><프랑스혁명사>(1982) <인도의 발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