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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삼일절 단상(斷想) / 김태희

문근영 2010. 3. 20. 07:16

 

삼일절 단상(斷想)


                                                         김 태 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3월 1일 10시 무렵, 탑골공원 안팎 여러 곳에서 삼일절 9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여의도에서는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충돌이 있었다지만 종로에서는 평온하게 삼일절을 기념하고 있었다. 탑골공원 밖에서는 삼일절 재현행사가 열렸다. “오등은(우리는) 자(이)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 선언서 낭독에 이어서 흰 한복을 입은 학생, 시민들이 종로거리를 행진했다. “대한독립만세! 만세!”

기미독립선언서, 비록 문장이 어렵지만

고등학교 때, 3학년 국어 첫 시간이 바로 기미독립선언서였다. 최남선이 쓴 선언서는 어려웠다. 국한문 혼용체에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 참고서의 도움으로 겨우 그 의미를 알았다. 그래도 얼마간 이해하고 나서 소리 내어 읽노라면 민족자존심과 도의적 우월감에 당당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한용운이 첨가한 공약 3장의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부분을 읽을 때는 결연한 느낌이 들었다.

문장이 어렵다는 점도, 최남선이 후일 부역을 했다는 점도 독립선언이나 3.1운동의 큰 의의를 손상시키지는 못한다. “대한독립만세”라는 외침 속에 그 뜻은 통했고 온 민족은 하나가 되었다. 독립은 ‘시대적 대세’였다. 침략주의와 강권주의를 거부하고 자유, 정의, 평화, 그리고 인류의 공생을 주장했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했다. 3.1운동을 통해서 조선은 왕의 나라도 양반의 나라도 아닌, 바로 백성의 나라가 되었다. ‘민주공화국’을 선택한 것이다.

3.1운동의 의의를 다시 새기면서, 오늘의 ‘세계개조의 대기운’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경제위기를 타파하는 것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라 하겠는데, 나는 그것이 민생 또는 공동체의식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무절제한 금융자본의 탐욕이 지구촌 공동체를 연쇄적 경제위기에 빠뜨렸다. 실물경제를 뒷받침해야 할 금융이 실물과 괴리된 거품을 조장했다. 은행이 눈앞의 영업이익을 쫓아 불량상품을 팔고 빚쟁이를 양산해 신용위기를 확산시켰다. 생산과 무관한 주택이 실제 효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평가되면서 경제를 교란시켰다. 부시정부의 부유층에 대한 감세정책은 미국의 양극화와 재정적자를 심화시켰다. 금융허브를 지향했던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무너졌고, 불과 1년 전만 해도 개방모델로 칭송받던 두바이도 흔들린다. 경제위기의 진화에 나선 미국 오바마정부는 부유층 증세를 통해 양극화와 재정적자를 완화하고자 나섰다. 규제를 통해 은행의 공공성을 회복하고자 하고 있다.

참으로 민생이 절실한 때

대한민국 공동체는 세계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10여 년 전 재벌의존 성장정책과 준비 없는 금융개방으로 환란을 겪었다. 이후 지난 10년 동안 양극화가 더 심화됐다. 그 사이 신용카드대란도 겪었고 부동산대란도 겪었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는 여전히 실패한 과거와 실패한 나라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안팎의 위기에서 배우기는커녕 더욱 위기적 상황으로 돌진하는 느낌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허물고, 일반(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통합하려 한다. 얼마 전엔 부동산 부자들에게 세금을 돌려주더니, 최근엔 경제의 어려움을 들어 근로자들의 월급을 줄이려 한다. 생활필수품인 주택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미 드러난 폐해를 외면하고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각각 고유의 원리와 동인이 있다. 통합되면 그것이 파괴되고 안전판을 상실할 것이다. 일반은행이 투자상품에 현혹되어서 은행 부실을 초래한 것도 이미 보았다. 감세조치의 결과는 부시정부가 보여주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열심히 일한 만큼 벌 수 있어야 하고, 많이 번 만큼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경제살리기’ 구호는 겉돌고, 국민이 부자되는 시대가 아니라 부자만 국민인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경제살리기’란 민생, 즉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서로의 삶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경제여야 한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결국 엄청난 사회적 비용증대와 국력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선종을 돌아보면서, 약자와 이웃에 대한 배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란 것을 실감한다. 참으로 민생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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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희
· 다산연구소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