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
혼몽한 꿈에서 깨어나 앞마당을 바라보았을 때. 마당 구석 보라색 라일락과 흰 색 라일락꽃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생명의 봄을 살고 있구나, 나는 생각하면서 간밤의 꿈을 곱씹어 보았다.
흰 한복을 걸친 아름다운 여인이 거기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설 때까지는 그녀가 누구인 줄 몰랐다. 고운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짓는 여인, 나는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서면서 그 옷의 흰 빛이 너무 시리다고 생각했다. 순간, 그녀의 소매 끝, 저고리 끝이 꿀 사탕 같은 분홍빛으로 바뀌었다. 찬란한 그 빛에 눈길을 주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아침을 먹으며 꿈 이야기를 했을 때, 아내는 동그랗게 눈을 떠 보이면서 내게 반문했다. 내가 소복을 입었던 거죠?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그 끝동의 아름다운 빛깔을 이야기했다.
꿈에서 소복을 입은 아내를 보았던 것인지 모른다. 설레설레 고개를 젓긴 했어도, 아내는 내 얼굴에서 피로를 읽어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다. 어머니가 늘 꾸셨던 색깔 있는 꿈을 이제 나도 꾸게 되었다. 하지만 색상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것이 아니다. 꿈속에서 나는 아내의 소복 소매에서 끝동의 무늬를 만들어냈다. 죽음의 공포를 부정할 어떤 빛깔을 나는 꿈속에서 수놓았던 것이다.
2.
『주례』는 꿈을 여섯 가지로 나누었다. 편안한 상태에서 저절로 꾸는 꿈을 정몽(正夢)이라 하고, 가위눌린 꿈을 악몽(?夢)이라 했으며,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나타나는 꿈을 사몽(思夢), 백일몽을 오몽(寤夢), 기쁨 끝에 꾸는 꿈을 희몽(喜夢), 두려운 나머지 꾸는 꿈을 구몽(懼夢)이라 했다. 주자(주희)는 평소 꿈에 친구나 친척을 볼 때마다 그 다음날에 그의 서신을 접하여 보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어떤 사람이 그에 관한 말을 언급하게 된다고 하고, 그런 꿈만을 정몽이라고 했다.
하지만 꿈은 일상의 일을 예견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정몽보다도 정몽 아닌 꿈을 더 많이 꾼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샤머니즘에서 꿈은 환자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내는 구실을 하며 인디언 부족 가운데는 병 치료에 꿈의 해석을 사용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도 꿈에 대한 탐색이 오랜 전통을 이루어왔다. 주공이 만들었다고 하는 『몽서(夢書)』가 해몽의 교범으로 이용되어 온 것은 그러한 전통을 짐작하게 한다. 『태평어람』에 들어 있는 「몽서」를 보면, 꿈이란 신령한 존재가 경계의 뜻을 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꿈은 본뜨는 것이다. 정기가 움직이는 것이다. 혼백은 몸을 떠나고 신이 내려오는 것이다. 음양을 느껴 길흉을 경험하는 것이다. 꿈은 마치 현명한 자가 자신의 과실을 알고 스스로 고치는 것처럼 그 사람의 과실을 미리 말해준다. 꿈은 알려준다. 그 형상을 알려 준다. 눈이 있으나 볼 수 없고, 귀가 있으나 들을 수 없고, 코가 있으나 숨 쉴 수 없고, 입이 있으나 말할 수 없다. 영혼은 나가 노닐고, 몸은 홀로 존재한다. 마음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 몸을 잊는다. 신에게 받은 경계해야 할 바를 돌려 인간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경계를 받고 불경하게도 신을 잊으면, 신이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오고부진(寤告符臻)이라고 한다. 옛 부터 몽관이 있어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
우리 선조들도 꿈을 국가의 중대사나 인간사, 실생활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규보(李奎報)가 「몽험기(夢驗記)」와 「몽설(夢說)」을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선후기 남인 정치가 가운데 목만중(睦萬中)은 「경몽(儆夢)」이라는 글에서 악몽을 다루었다. 꿈을 기록한 이 글에는 그의 내면의 살풍경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당색으로는 남인에 속하면서도 채제공(蔡濟恭)의 채파와 대립하고, 1801년에는 영의정 심환지(沈煥之)와 함께 천주교도와 남인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 다산 정약용과도 친했지만, 다산은 그와 관련된 기록들을 애써 삭제했다. 그래서일까, 꿈을 기록한 그의 글에는 내면의 살풍경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1771년 정월 그믐의 꿈에서, 목만중은 목사로 나가는 친구를 전송하며 술을 마시다가 마음에 차지 않는 일을 당해서 화를 내었다. 그리고는 옷을 떨치고 걸어가다가 길가에 면한 관아에 올라 옷을 풀고 쉬었다. 그때 서쪽 곁방에는 이름 모를 부인이 있었다. 잠시 후 일어나려 하는데 관리가 한 사람 달려와서 옷을 바치며 입혀준다. 그런데 흙 묻은 신발이 자기 소매 속에 들어 있지 않은가! 그 부인은 “어르신도 소매에 이런 물건을 숨기십니까?”라고 하였다. 문을 나서 가다가 예전에 알던 북리(북촌)의 소년을 만나 길 안내를 받았다. 이번에는 손에 든 부채가 자기 것이 아니라 다 닳아빠진 것이었다. 여인이 있던 곳으로 가서 달라고 하자 여인이 매우 섭섭해 하였다. 다시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버선과 의대가 풀어진 사실을 깨닫고 몸을 숙이고 묶다가 문득 소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되었다. 행인에게 길을 묻고서야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깨닫고는 급히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동쪽 길이 평평하고 곧아 보이기에 앞서의 안내를 무시하고 좁은 길을 따라 걷자니 성문에 닿았다. 사방은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행인의 말을 듣고 모화현 길이 아닌 남쪽 길로 해서 집신장수 초막을 지나 학구의 서당을 거쳐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다가 집신장수 초막에서 꾐에 넘어갔다. 학구의 서당에서는 웬 소녀가 소매를 끌어당겨 옷고름을 풀었으므로 잠시 누웠다. 그러자 한 동자가 그의 속옷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해치려고 대들었다. 그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고, 자기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목만중의 가위눌린 꿈은 현실 속의 욕망과 좌절과 기만과 분노의 일상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지름길로 가면서 더디 가고, 남북의 방향도 헷갈렸으며, 가는 곳마다 창망한’ 현존재의 모습이 꿈속에 여실하게 나타난 것이다. 남인 내부의 분파에 따른 고립감은 그로 하여금 그토록 복잡한 꿈, 길을 찾아 헤매는 꿈을 꾸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꿈에서 깨어난 뒤 목만중은 꿈속에서 자기 자신이 근신하지 못해 화를 자초한 것에 대해 자책하였다.
지름길로 가면서 더디 가고, 남북의 방향도 헷갈렸으며, 가는 곳마다 창망했던 것은 곧 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니, 재앙이 몸에 미칠 것을 면한 것 만해도 요행이다. 교만하고 망령된 일이나 사치와 무름의 습관은 내가 평소 매우 싫어하는 바인데, 본성이 과격하여 사람의 그런 본정과 태도가 일과 행동에 나타나는 것을 개탄하면서 보다가, 가슴속이 답답하여 울컥해져서는 잘 참아내지 못해서 안색과 언사로 남의 성질을 저촉하는 것을 혹 면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 기질이 편벽되어 그런 것이다.
3.
꿈은 보편적인 체험이면서도 실은 대단히 사적인 체험이다. 꿈은 자신의 갖가지 생각과 욕망들이 펼쳐지는 내밀한 공간이다. 꿈은 꿈을 꾼 자의 의식구조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으며 꿈의 내용에는 꿈을 꾼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반영되어 있다.
다만 글로 남긴 꿈 이야기를 꿈의 온전한 재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꿈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꿈은 조작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꿈 이야기는 작자의 가장 솔직한 번민과 복합심리를 드러내고 욕구의 분출을 시도한 서사로서 주목된다.
광해군 때의 허균(許筠)은 「주흘옹몽기(酒吃翁夢記)」에서, 꿈에 지옥에 갔다 온 이야기를 적었다. 친구 주흘옹이 꿈에 지옥에 끌려가 불교 배척의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되었을 때 허균이 그를 위해 혐의를 벗겨주는 꿈을 꾼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이야기 자체는 구조가 매우 간단하지만, 그 함의는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허균이 꿈속에서 친구가 사상적 문제로 고통을 겪는 것을 본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그러한 사상투쟁 속에 있음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대학 시절, 나 자신도 허균이 꾼 꿈과 유사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거칠고 의욕에 넘쳤던 청년기와 장년기를 지나,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소복 입은 아내의 꿈을 꾸게 되다니! 학문세계의 장대한 계획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엄중한 질책을 내리는 듯하다. 회광반조(回光返照)하라고 꾸짖는 것이다.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