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두려움 없음은 자유로 가는 길 - 마하트마 간디

문근영 2010. 3. 1. 08:47

두려움 없음이야말로 정신의 세계로 가는 첫 걸음이다. 비겁한 사람은 결코 도덕적일 수 없다.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종교가 자리할 수 없다.
 기타의 16장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두려움 없음이 신성에 이르는첫번째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이러한 배열이 시의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 없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생각으로는 두려움 없음이 첫번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우연이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두려움 없음은 다른 고상한 기품을 기르는 데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덕목이다. 어떻게 우리가 두려움을 지니고 진리를 추구하며 사랑을 감싸안을 수 있는가? 프리탐(pritam:16세기 구자라트어 시인)이 얘기한 대로 진리로 가는 길은 용감한 자의 길이며, 비겁자는 따를 수 없는 길이다. 용감한 자는 두려움 없음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며, 칼이나 총 혹은 그 밖의 살상에 필요한 무기들은 비겁한 자들에게만 통용되는 것일 뿐이다.
 두려움 없음이란 질병이나 부상, 죽음 혹은 재산의 잃어버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명예의 상실 등 모든 타부적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두려움 없음에 이르는 길
 두려움의 완전한 극복은 신을 찾아 미망(迷妄)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사람만이 이룩할 수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이러한 목표를 향해 계속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이면 차츰차츰 그 바라는 바를 이루어 갈 수 있다.
 내면의 적들에 대해 우리는 항상 두려움을 갖고 걸어가야 한다. 우리가 동물적 충동, 분노 등과 같은 감정들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내면의 진지에서 이러한 모든 적들을 진압하게 되면, 외부의 두려움은 자연히 소멸된다. 모든 두려움은 육신을 중심으로 그 세력권을 형성하므로 우리가 육신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기만 하면 그들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움이 우리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근거 없는 환상의 구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행복이나 가정, 나아가 육신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면 두려움은 우리 가슴 속에서 설자리를 잃게 된다. 그들을 멀리함으로써 지상의 기쁨을 즐기라는 말(Tena tyaktena bhunjithah)은 탁월한 명령이다.
 행복과 가족, 육신은 언제나 그대로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자세를 바꿀 뿐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 것이 아니며 신의 것이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그의 소유이다. 그런데 우리가 두려워할 게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파니샤드(Upanishad)는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우리에게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들에게 흥미를 갖는 것은 소유주로서가 아니라 잠시 지키는 사람으로서인 것이다. 그를 대신할 때 신은 우리에게 능력을 베풀어주며 힘과 무기를 주어 어려움을 헤쳐가게 한다.
 우리가 주인의 자리를 떠나 겸허한 노예의 자리에까지 맞춰 갈 수 있을 때 모든 두려움은 안개처럼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평화를 얻어 진리의 신과 얼굴을 맞대며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신에 대한 두려움
 신을 두려워하고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버려야 한다. 세상에는 미신과 위선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옳은 일을 하려 해도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진리까지도 억압된다. 가장 훌륭한 방법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대로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두려움 없음이 오만이나 공격적인 성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두려움의 표시다. 두려움 없음은 마음의 평정과 평화를 의미한다. 그렇게 때문에 신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은 중요하다.
 나는 두려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는가? 오로지 신에 대한 두려움만 있으면 그 밖의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영혼의 용기
 모든 개인은 자기 방어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몸을 단련해서 상대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태에서의 자기 보존을 의미한다. 용기는 신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속성이다. 나는 몸이 건장한 사람 중에 비겁한 사람을 많이 발견했으며, 연약한 몸을 가진 사람에게 엄청난 용기가 숨어 있음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르는 어슬녘에 놓여 있다. 한쪽은 어두운 밤의 깅이고 다른 쪽은 새벽의 길이다. 만약 어두운 밤으로의 길이 아닌 솟아오르는 새벽을 보고 싶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 앞에 놓인 진리를 꼭 잡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따르며, 그를 가르치고 실천해서 두려움 없이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를 향한 행진의 길로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진리와 비폭력의 길을 택했다. 우리는 좁지만 곧은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다는 신의 약속에 따라 확고한 믿음과 희망을 갖고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이 나라와 같이 자기 고집과 어리석음 등 비겁함으로 가득한 나라에서 우리는 더욱 많은 용기를 가꿔가야 하며 자기 희생의 정신을 계속 다져가야 한다. 나는 양순하고 점잖은 사람들이 더 많은 용기를 내주기 바라며, 교수대에 올라서도 두려움 없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강해지기를 원한다.
 지상의 권력에 무릎 꿇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용기는 없다.
 세속적 권력이 크다 해도 넘치는 믿음으로 정신의 어려움 없이 사는 것 보다는 못하며, 그 밖의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우리는 군사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나를 따라 비폭력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가진 나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제일 먼저 할 일은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