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산 / 조명
말랑말랑,
연한 정수리부터 빠져나가야 할 세상의 관문 질에,
태아는 발부터 밀어 넣다 사타구니에 걸리고,
손을 들이밀다 갈비뼈에 걸리며,
태변의 늪에 얼굴을 묻고 할딱거리다가,
다이빙하듯
다시 두 팔을 모아 힘차게 시도해보다 휘청,
목을 젖히며 퉁겨져 나와
어둠 한구석에 웅크리고 주눅든 주먹을 느릿느릿 빨다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통찰의 눈동자가 열려
그 동그란 두개골부터 부드럽게 진입시키는데 아뿔사!
때를 놓쳐버린 머리는 점점 굳어
세상과 질과 태아가 동시에 악을 쓰는데도,
문이 열리다 닫히고 열리다 멈추는 바람에, 우불두불,
외계인처럼 일그러진 두상은 기형,
탯줄 끊기자마자,
안에서도 밖에서도 외면당하는 이런, 탄생
도처에 있다.
시집 <여왕코끼리의 힘> 2008.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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