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 타
-이한직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윈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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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에서 동물 이미지는 야생적이거나 하찮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한직의 낙타는 인간적인 모습이다.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회초리는 바른 길로 가라는 꾸짖음이다. 망념(妄念)
을 버리고 깨끗한 영혼으로 세상을 견디라는 준엄한 매다. 가슴 깊이
저며 있는 사랑을 감추고 잘못된 순간에 빛나는 매. 마음의 실상에 가
닿게 만드셨던 스승은 그러나 등에 혹을 붙인 쭈글쭈글한 낙타처럼
늙으셨다. 사랑을 베풀고는 추억으로 홀로 봄볕에 기대어 잠기셨다.
잔디 위에 앉아 낙타를 본다.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아득
한 그리움이 가는 봄 햇살로 저려온다. 회초리, 명치끝을 아리며 온다.
<박주택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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