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사랑 連理枝(연리지)
(이을 연, 이치 리, 가지 지)
나란히 붙은 나뭇가지
다정한 연인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의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의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한다. 비목어는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고 한다.
연리지 (連理枝)
연리지(連理枝)라면「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하며 천년에 한번 나타날까말까 하다는 희귀한현상이다. 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 간혹 거대한 고목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다정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다. 이처럼 '比翼'이나 '連理' 모두 그 말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비익조 (比翼鳥)
중국에서 암수 한쌍이 한몸이 되어 난다는 전설상의 새. 봉선(封禪)이 행해질 때는 동해에서 비목어(比目魚)가, 서해에서 비익조가 온다고 하는 한편,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숭오산(崇吾山)의 만만(蠻蠻)이라는 비익조가 홍수를 몰고 온다고 하여 길조(吉鳥)이기도 한 반면 흉조이기도 하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서 "하늘에 있거든 바라건대 비익조가 되소서" 하고 노래한 것처럼 남녀의 깊은 인연의 예로도 이용되며, "비익총(比翼塚)"은 이것에 근거한다.
비목어 (比目魚)
동쪽바다에는 비목어가 살았고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으므로 두마리가 자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해염을 칠 수 있고 한자어로 비목어(比目魚) 토는 첩(貼)이라 하였다. "지봉유설"에 광어(廣魚:넙치)및 설어(舌魚:서대)를 첩류(貼類)라 하였다. 가자미 광어 넙치를 말하며 남녀간의 애듯한 사랑을 이야기 할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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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 연리지
청도군 운문면 지존리 소나무 연리지
청도군 운문면 지존리 소나무 연리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 연리지
충남 외연도 동백나무 연리지
충남 금산읍의 팽나무 연리목
충남 금산읍의 팽나무 연리목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연리목
연리지 (連理枝)
중국의 남북조시대 송나라(420~479)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 채옹전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란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세월이 한참 지나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 인용되면서부터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변함없는 사랑의 뜻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서기 736년, 무혜왕비를 잃고 방황하던 56세의 현종은, 남도 아닌 자신의 열여덟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제왕이 하는 일에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한 왕조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훗날 양귀비가 된 스물두 살짜리 며느리와의 사랑 놀음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비극으로 끝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양귀비가 죽고 50여 년이 지난 서기 806년, 유명한 시인 백거이(백낙천)에 의하여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당태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백거이가 이렇게 노래하였다.
"칠월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두 사람은 은밀한 약속을 하는데
우리가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가 되세..."
중국의 전설에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만 있는 새다.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신화 속의 새이다. 연리지는 물론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 하나가 되어야 만들어지는 나무이다.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연리지는 단골손님이 된다. 우리 역사 속에도 일찌감치 연리가 등장한다. 남녀의 사랑에 한정시키지 않고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때로는 선비들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민들 사이에선 이 나무에 빌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유행했다. 또 연리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 연인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그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에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되었으며,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에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도 광종 24년(973) 2월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지가 났으며, 성종 6년(987)에 충주에서도 연리지가 생겨났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연리지의 출현을 일일이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생각한 것이다. 고려 중기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의 고율시(古律詩)에...
“그대 비록 후배라 함께 공부 안 했으나
연리지 나무처럼 한집안 형제 같네...
난새는 짝 잃으면 못 떠나고 방황하네
초목 중엔 연리지가 의좋기로 소문나니
꽃 마음은 한가지나 꽃답기는 다르도다
부부가 없다면 짝이 어찌 될 것이며
형제 또한 없다면 기러기가 어이 줄서 가랴…”
하며 친구 사이의 우정과 혈육의 정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또 김시습의 "금오신화"에도...
“연리지 가지 끝엔 붉은 꽃
서러워라 내 인생 나무만도 못하구나
박명한 이 청춘 눈물만 고이네”
라고 하여 저승에서 나누게 되는 사랑의 서러움을 연리지와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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