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언문은 조선시대에 한문 못지않게 쓰였다

문근영 2009. 12. 24. 07:39

 1202. 라틴말만 우대했던 이탈리아, 이탈리아 말 세상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7. 12. 05.
 
 

 

 

       

       김수업 선생의 “말꽃타령”이란 책에 보면 이탈리아 말 애기가 나옵니다. 이탈리아도
       예전에는 배웠다는 사람들이 이탈리아 말을 업신여기고, 라틴말을 쓰면서

       우쭐거렸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이탈리아 말

       밖에 쓸 수 없었지만, 귀족들은 라틴말을 쓰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줄

       알았지요. 예전 우리나라 지배층이 한자를 숭상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13세기에 프란체스코라는 성인이 이탈리아 말로 설교를 하고 글을 쓰고

       시를 지었습니다. 그 뒤 14세기 이분에게 감화를 받은 단테가 《토박이말을

       드높임》이라는 논설을 라틴말로 써서 귀족들에게 돌리고, 이탈리아 말로 위대한

       서사시 《신곡》을 지었지요. 이것이 이탈리아 말로도 시를 짓고 학문을 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어,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같은 사람이 뒤따르면서 토박이말로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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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514. 언문은 조선시대에 한문 못지않게 쓰였다  (2005/11/25
)

    

      우리는 흔히 훈민정음이 창제 이후 사대부들의 배척을 받아 거의 쓰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언문, 암클 따위로 천대하여 불렸으며, 그저 부녀자들에 한해서 쓰였다고 알아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목원대 김슬옹 겸임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그것이 잘못
       알려진 것임을 밝혀냈습니다.

 

       그는 1967권 948책 분량의 조선왕조실록 시디본과 문서본을 철저히 비교 검증했는데
       언문 즉 훈민정음은 주로 왕조의 정통성과 정체성 홍보와 유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사용했고, 그밖에 왕실의 행정 문서나 외교 문서로도 쓰였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왕실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공식 문서에서는 언문이 주된 글자였다는 것과 조선 후기로
       오면 언문은 일반 백성들에게 한문 이상으로 쓰였다고 밝힙니다. 조선시대에 언문은
       한문이라는 공식 문자에 대한 부차적 쓰임새가 아닌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공식
       글자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