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탐방

시인 박경리

문근영 2009. 10. 28. 19:28





'토지'에서 서희가 기거하던 별당채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 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집   
십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것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예날의 그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릉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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