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탐방

시인 김영랑

문근영 2009. 10. 27. 11:40



북도에 소월이라면 남도에 영랑이라고 불리울 만큼 우리 말의 서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영랑 김윤식은 1903년 강진읍 남성리에서 태어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의 서정시가 영롱한 광채를 발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30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등이 동인이 되어 내놓은 <시문학>에서이다.
그리고 1935년 박용철의 힘으로 시문학사에서 <영랑시집>이 발간된다.
그의 유명한 시<모란이피기까지>도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최남선, 이광수, 노천명, 서정주 등이 일제에 꺾여나갈 때
영랑은 김정한처럼 붓을 놓고 지조를 지켰다.
광복을 맞은 영랑은 우익청년운동에 정열을 쏟았으며 1949년에는 한때 공보처 출판국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지하 생활을 하다가
서울이 수복된 9월 28일 포탄의 파편에 부상을 입고 이튿날 운명하였다.




영랑은 자연의 맑고 깨끗한 정경을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하였고
자연의 어느 한 순간이 가져다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였다.




영랑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시인 자신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적 장단과 호응을 이루며
하나의 정경으로 표현되었다.
그의 시에 멜로디만 붙이면 그대로 노래가 되는 운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인생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만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듯한 자연에 대한 상상도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며,
새로운 비유와 표현의 구사도 언어사용의 폭을 넓힘으로써 실제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와 절묘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영랑의 시는 그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오매 단풍들것네' / 김영랑

                      

'오매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들것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 김영랑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오르는 아침날빛이 빠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사개틀린 고풍의 툇마루에 / 김영랑



사개틀린 古風의 툇마루에 없는 듯이 앉아
아직 떠오를 기척도 없는 달을 기둘린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뜻없이

이제 저 감나무 그림자가
사뿐 한치씩 옮아오고
이 마루 위에 빛깔의 방석이
보시시 깔리우면

나는 내 하나인 외론 벗
가녈픈 내 그림자와
말없이 몸짓없이 서로 맞대로 있으리니
이 밤 옮기는 발짓이나 들려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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