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연꽃차 이야기
지난 여름 연꽃차를 마신 이야기를 해야겠다. 연꽃은 날씨에 따라 개화 시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맑게 개인날은 아침6시쯤에서 꽃이 문을 열고 저녁 5시 무렵이면 문을 닫는다. 꽃이 피었다가 오므라든다는 표현이다. 꽃은 나흘 동안 피는데 이틀째 피어날 때의 향기가 절정이라고 한다. 이틀째 피어난 꽃에 주로 벌들이 모여든다. 연꽃차는 이틀째 핀 연꽆이 오므라들 때 한두 잔 마실 정도의 차를 봉지에 싸서 노란 꽃술에 넣어둔다. 이때 너무 많이 넣으면 그 무게를 못 이겨 꽃대가 꺾인다. 하룻밤이 지난 다음날 아침 꽃이 문을 열기를 기다려 차 봉지를 꺼내어 차를 우려 마시면 연꽃차가 지닌 황홀한 향취와 마주치게 된다.
이때 보통 차처럼 끓인 물을 식혀서 우리는 것보다는 차디찬 물로 차를 우리면 연못가에서 듣던 바로 그 향기를 음미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꽃한테는 너무 잔인한 방법이고 차의 정신에도 어긋나지만, 이틀째 개화한 꽃을 따서 그 안에 차를 한 웅큼 넣고 비닐로 싸서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그때 그때 꺼내 쓰면 된다고 한다. 옛 도반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나로서는 권할 만할 일이 못 된다. 1년을 두고 단 한 번 피어난 꽃이 너무 애처롭지 않은가. 차의 진정한 운치는 담박하고 검소한 데 있다. 그릇이 지나치게 호사스러우면 차의 운치를 잃는다. 차의 원숙한 경지는 번거로운 형식이나 값비싼 그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릇에 너무 집착하면 담박하고 검소한 차의 진미를 잃게 된다. 맑은 바람 속에 맑은 차를 마시면서 맑은 정신을 지니자고 한 소리다. 글 쓰는 숙제를 마쳤으니 차나 한 잔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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