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평단활동] 시가 있는 하루는 말랑하다는데, 그래서 너에게.

문근영 2025. 2. 7. 07:24

읽을수록 좋아서 오래 곱씹다 두고두고 꺼내보는 시도 있습니다만, 시는 늘 어렵습니다. 수필, 편지, 일기, 후기, 감상문, 소설... 다양한 형식의 글을 큰 편식 없이 두루두루 잘 읽는 편인데 시는.. 시는 도통 모르겠어요.

사실 시는 놀랍도록 익숙하게 하루 안에 늘 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한 단어에 마음을 뺏겨 원시를 찾아 읽고, 버스 정류장에 하얀 시트지로 새겨진 시도 읽고, 화장실에 앉아 굳이 기운을 써서 낡은 시를 읽기도 하고, 마음에 쏙 들어버린 노랫말을 적어 보기도 하거든요. -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가 저는 시 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시인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는 더 받아들이지 못한 채 흘러가버립니다. 시는 정말, 정말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하루에는 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시가 있는 날은 확실히 없는 날 보다 더 말랑한 것 같거든요. 마치 모서리를 조금 깎아 낸 것처럼 더 부드럽고, 말랑하고, 뭉근하게 보고 말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학창 시절에 빨간 동그라미, 밑줄 좍좍 그어가며 분석하듯 배운 시도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에 문득 순간을 부드럽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나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는 오래오래 선명한 색깔로 계절마다 더 또렷하게 빛나요. 가장 차가운 시기에 그리던 가장 따뜻한 풍경의 초록빛 청포도와 새하얀 눈 속에 뜨겁게 빛나는 빨간 산수유 열매 가요.

 

지난주 조카가 같이 읽자고 신나게 들고나온 책이 마침 시집이었습니다.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이었어요. 몇 해 전 ‘보리~ 보리~ 익은 보리~ 고추장에 비벼 먹는 익은 보리~~’ 하는 경쾌한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이게 뭐야ㅋㅋㅋ 너무나 중독적이다. 하고 웃었는데 그 노랫말이 바로 최승호 시인의 동시였지 뭐예요. 둘이서 한 편씩 번갈아가며 읽다 점점 흥이 붙어서는 노래 부르듯 엉덩이까지 들썩였어요. 맞어. 시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지. 이렇게 귀엽고 신나기도 하는데!! 조카의 첫 시는 이렇게 귀엽고 재밌는 말이었어요. 저는 이런저런 동시를 모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니까 봐봐 이 동시집 좀 봐봐!! 세상을 말랑하게 만드는 시가 귀엽기까지 한데. 읽어야지!!

 

그래서 마음에 쏙 든 동시 두 편을 읽어드립니다.

 

대나무 – 문근영 [개구리까지 톡톡]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가 나를 세워놓고

벽에

가로로 금을 긋는다.

할머니다

그려 놓은 금

양옆으로

세로금을 그었더니

 

벽에

대나무 한 그루 우뚝 섰다.

 

나를 따라 크는

대나무

 

우리 집 거실 귀퉁이에도 조카와 함께 크는 대나무가 있어요. 예전 집에는 우리 삼남매와 함께 크는 대나무가 세 그루 있었지요. 그 다정한 세월의 빗금들을 대나무라고 표현하다니. 온 집 가득 순식간에 대나무로 채워져 푸르러지는 것 같았어요. 바람 따라 잎 따라 같이 날아오는 조카의 웃음소리는 덤이더라고요.

 

레코드판 –문근영 [개구리까지 톡톡]

 

나무가

녹음해 둔

 

풀벌레 소리

새소리

빗방울 소리

귀를 대면

조용하게

흘러나올 것 같다

 

요즘 꺾이고 떨어진 졸가지들을 모아 자르고 갈아서 자석 같은 것들을 만들고 있어요. 나무의 나이테를 이렇게 오래 만지고 바라본 적이 없었는데 다듬고 드러낼수록 참으로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향은 또 어떻고요. 싱그러운 가 했다가 구수한 가 했다가 상큼한 가 했다가. 나무가 자라온 시간이 담겨 있어 그런 가 보다 했는데 세월의 아름다운 소리들을 품고 있어 그렇게 따뜻했던 거였네요.

 

시집 제목도 귀엽지요. 개구리까지 톡톡. 마침 오늘 입춘입니다.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고 나오겠군요. 매섭게 부는 바람이 걱정입니다만, 개구리까지 톡톡. 귀엽게 말랑해지는 오늘이기를. 아앗!! 개구리는 경칩에 나오지요. 안심입니다. 그래도 개구리까지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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