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할머니 무서워요.
밖에서 칼 가는 소리가 나요.
귀신이 긴 머리칼 풀어 헤치고 입에는 칼을 물고
뾰족뾰족한 긴 손톱으로
벽을 뚫어 나를 엿보는 것 같아요.
쌩쌩 바람 부는 오늘 같은 날
문밖에 누가 있겠냐.
할머니는 무딘 칼로 무를 긁어
무즙을 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할머니는 거칠거칠한 손바닥으로
내 발바닥을 쓱쓱 문질렀다.
할머니는 길고 뾰족한 바늘을
흰 머리칼에 쓱쓱,
입에 흰 실을 물고 저기 봐라, 하더니
내 손가락 마디를 톡!
검고 붉은 피가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문틈으로 엿보던 귀신이
오들오들 떨며
뾰족한 자기 열 손가락을
호호 불며 침을 쭉쭉 바를 것 같은
겨울밤이었다.
《외톨이 왕》 (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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