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애송 사랑詩

겨울밤 / 임수현

문근영 2020. 3. 3. 01:31

겨울밤

 

할머니 무서워요.

밖에서 칼 가는 소리가 나요.

귀신이 긴 머리칼 풀어 헤치고 입에는 칼을 물고

뾰족뾰족한 긴 손톱으로

벽을 뚫어 나를 엿보는 것 같아요.

 

쌩쌩 바람 부는 오늘 같은 날

문밖에 누가 있겠냐.

 

할머니는 무딘 칼로 무를 긁어

무즙을 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할머니는 거칠거칠한 손바닥으로

내 발바닥을 쓱쓱 문질렀다.

 

할머니는 길고 뾰족한 바늘을

흰 머리칼에 쓱쓱,

입에 흰 실을 물고 저기 봐라, 하더니

내 손가락 마디를 톡!

검고 붉은 피가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문틈으로 엿보던 귀신이

오들오들 떨며

뾰족한 자기 열 손가락을

호호 불며 침을 쭉쭉 바를 것 같은

겨울밤이었다.


외톨이 왕(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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