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환절기를 걷다 / 김경태
1.
벚꽃은 흩날리고 떠나는 너의 뒷모습은
출항하는 바다에 비친 등불을 닮았다
괜찮다, 거짓말하며
돌아서는 발걸음
2.
도망치고 싶었다, 장마철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편지 속 글귀들이
책갈피 단풍잎처럼
말없이
부스러진다
3.
여민 옷깃을 풀고 달빛에 기대어 본다
푸른 입맞춤으로 타들어 가는 눈물을
지나는 이 계절 끝에
남겨 둔다,
바람이 차다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조시인 정수자
자연스러운 시상, 율격의 갈무리 돋보여
위반도 즐기는 현대예술에서 정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말을 다시 꺼내는 것은 정형시의 전제 때문이다.
그만큼 시조에서는 형식과 내용의 조화로운 완결미가 중요하다. 정형 구조의 운용 능력이 확연히 드러나는 종장 처리도 중요한 평가 요소다. 어떤 놀라운 발견이나 발상도 정형 속에 녹여 담지 못하면 시조의 위의(威儀)를 놓치는 것이다.
그런 특성을 앞에 두고 김경태·황혜리·조우리·이용규·김나경씨의 작품을 거듭 읽었다. 각기 삶에 육박하는 진정성과 개성적인 발성으로 나름의 시적 개진을 보였다.
30대가 처한 현실의 응전을 발랄하게 그려낸 황혜리씨나 전보다 정제된 서사와 전개를 긴 호흡으로 보여준 조우리씨는 종장의 묘미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밀렸다. 오늘의 현장에서 길어내는 이용규씨의 육성과 청춘이 당면한 현실에 직입해간 김나경씨의 목소리도 진솔한 울림을 담았지만, 그 이면까지 짚는 밀도에는 못 미쳤다. 결국 김경태씨 응모작들에 담보된 장점과 새로움의 가능성을 집어 들었다.
당선작 '환절기를 걷다'는 자연스러운 시상과 율격의 갈무리가 돋보이는 가편(佳篇)이다. 정형 속의 자유를 구가하듯 음절 수를 넘나드는 음보율로 구(句)도 부드럽게 타넘고 있다. 각 환절기에 담긴 '사이'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펼치고 거두는 구조 운용과 종장의 낙차로 빚어내는 여운이 참하다. '푸른 입맞춤으로 타들어가는 눈물'의 힘을 집어올린 만큼, 정형의 영역을 더 뜨겁게 갱신해가길 주문한다.
눈물을 여미고 다시 설 응모자들께 위로와 기대를 전한다. 김경태씨 당선을 축하하며, 당찬 비약을 바란다.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 / 김경태
정형 속에 단단히 박힌 언어들이 좋았습니다
연초에 직장 내 근무 부서가 바뀌고 한 해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직장생활에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야근하고 주말 출근도 많았지만 그 시간을 쪼개서 새벽에 한밤중에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았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겁니다.
제 인생의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삶의 일부분을 문학을 위해 떼어놓고 살았습니다. 시조가 좋았고, 정형이라는 틀에 단단히 박혀 있는 언어들이 좋았습니다. 작은 우주 속에 저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글쓰기는 끊을 수 없는 마약인가 봅니다.
고마운 분이 많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정수자 선생님과 조선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쓰기를 응원해 주신 직장 선후배 동료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제 곁에서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들, 언제나 나의 꿈을 지지해 주는 친구 정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선작의 영감이 되어준 종석아, 네가 준 제주 녹차는 정말 맛있었어. 널 잊지 않을게.
무수한 인연들로 지금의 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신춘문예라는 인연으로 더욱 성장해 나가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한겨울 바람이 찹니다. 오늘 밤 따뜻한 제주 녹차 한잔 마시며 잠들고 싶습니다.
―1982년 부산 출생
―단국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평택시청 근무